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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박정희 현창사업, 발상의 전환 필요하다국민의 일치된 견해는 아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승만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기초 확립’, 박정희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완성’을 공로로 꼽을 것이다. 이 공(功)은 과(過)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해부터 ‘이승만박물관’과 ‘박정희박물관’ 건립에 대한 말들이 오가고 있다. 용산공원 확정시 ‘박정희박물관’ 건립 의견이 나왔고, 안국동의 송현공원에 ‘이승만박물관’을 건립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실 이 두 역사 인물에게 과가 없다면 이미 두 기념관이 국립으로 세워졌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일부 지역의 이승만 동상이 철거되고, 공공시설 중 박정희 기념물 일부가 삭제되기도 하는 수난이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관련 단체가 기념관 건립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다 광화문 거리 정비사업이 논의되면서 두 분의 동상도 세우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세계적 관광지 광화문 거리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만 있는 데다 광화문 월대까지 조성하게 되니 조선시대에 머물게 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이에 근대의 두 인물 기념물을 더하여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상징거리로 바꿔야 한다는, 기존과는 다른 차원의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광화문 거리는 차선의 축소와 인도의 공원화로 정비를 마쳤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있게 되면서, 다시 논의가 있게 되고, 이승만의 경우는 우파 영화인들의 다큐 영화 제작 공개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여파는 어느 기간까지 계속되리라고 관측된다. 그런데 이 두 분에 대한 박물관(기념관) 건립 주장에 대해서는 성격과 방향에서 나름의 견해가 있다. 즉, 특정한 지역에 건물을 지어 기념화 하는 것보다는 ‘전 국토의 기념화’로 하자는 것이다. 두 분은 공교롭게도 장기 집권 탓으로 전국 곳곳에 작던 크던 기념할 만한 흔적들이 남겨져 있다. 이 구체적인 처소를 작은 기념 장소로 현창하는 방안이다. 이승만은 이화장을 비롯하여 한국전쟁 중 피난 정부 관련 장소 등이 있고, 박정희도 생가터를 비롯하여 문경 교사(敎師) 시절 머물던 ‘청운각’ 등은 물론, 전방 군부대의 기념비 등이 있다. 이런 유적들을 재정비하여 기념하는 장소로 활성화시키면 그야말로 실질적인 국토의 기념관화 효과를 거둘 것이다. 만일에 공적 기금이나 지원금이 있다면 연차적으로 각 지역 기념물과 처소를 정비하는 공동체를 선별하여 지원한다면 실질적이고 모범적인 기념사업이 될 것이다. 이것은 역사인물의 현창 사업에 대한 새로운 발상의 전환,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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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춘 사진 개인전, '동양화 같은 한옥·서원' 파리를 홀린다'시간 속에 짓고 싶었던 한 채의 집, 한옥'이 프랑스 파리를 홀린다.사진가 이동춘(62)이 안동 '후조당' 등 한국의 고택과 서원을 한지에 인화한 '한옥 사진'전이 오는 30일부터 프랑스 파리 오&송 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의 첫 해외 상업갤러리 전시다.가로 1m, 세로 1.8m에 산수유 꽃과 설경, 녹음 등 사계절을 골고루 담은 대형 사진 작품이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의 모습도 담아 한국 문화유산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전한다.이동춘 작가는 지난 2005년부터 전국 곳곳의 종가 등 고택을 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미국 LA한국문화원을 비롯해 독일과 헝가리, 불가리아 등 전 세계에서 한옥을 선보여왔다.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에서 20여 일간 '경치를 빌리다– 한옥의 차경借景' 전시를 여는 등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이 작가는 "한지에 사진을 인쇄하는 방법은 최근 몇 년전부터 시도한 특별한 방식”이라며 "국가무형문화재의 손끝에서 탄생한 문경한지를 사용해 전통 가옥인 한옥이 지구 반대편 전 세계인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한 폭의 동양화 같은 사진 32점을 선보이는 전시는 2월1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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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 강화했지만 다음날 경복궁 담장 낙서 또 '낙서 테러'경복궁 서쪽 영추문 좌측 담장 낙서 부분의 왼쪽에 추가로 발생한 스프레이 낙서 사건이 하루만에 발생했다. 추가로 훼손된 담장에 대하여 종로경찰서(청운파출소)와 추가 훼손 사건 용의자를 추적하기 위한 긴밀하게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종로경찰서에서는 경복궁 담장 외부 전 구역에 경찰을 배치(낙서 추가 훼손사건 발생 이후부터)하였고, 경복궁을 포함한 4대궁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였다. 문화재청(경복궁관리소)은 추가 낙서로 훼손된 영추문 좌측부분을 현장확인 후 임시 가림막을 추가로 설치(2023.12.18. 오전 12시 50분)하였다. 훼손된 담장에 대해 문화재청의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센터 및 국립고궁박물관의 문화유산 보존처리 전문가 20여명이 12월 16일부터 보존처리 장비(스팀 세척기, 레이저 장비 등)와 약품 등을 통해 최대한 신속히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소 일주일 정도 예상되었던 복구 작업은 추가 훼손으로 인해 늘어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의 지정 범위에 포함된 경복궁 담장 훼손에 대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며, 앞으로도 국가유산의 훼손에 대해서는 경찰과 공조하여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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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과거시험 병폐와 커닝이만유/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문경새재는 ‘과거(過去)길’인가 ‘과거(科擧)길’인가? 문경새재 입구에 ‘문경새재 과거길’이란 표석이 세워져 있다. 답은 둘 다 맞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란 사설로 부르는 ‘아리랑고개’이기도 한 문경새재는 문경문화의 보고(寶庫)로서, 조선 제3대 왕인 태종 14년(1414년)에 개척된 옛길이라 600여 년의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그래서 오래된 ‘과거(過去)길’이다. 문경(聞慶)이란 지명은 ‘들을 문(聞)’과‘경사 경(慶)’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괴나리봇짐을 메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이곳의 좋은 기운을 받아 장원급제란 꿈을 이루기 위해 추풍령이나 죽령보다는 멀리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굳이 문경새재로 넘어가길 원했다. 그러니 문경새재는 당연히 ‘과거(科擧)길’이다. * 표석은 ‘과거(科擧)길’란 의미로 세워졌음. 문경새재 제2관문 조곡관과 제3관문 조령관 사이, 옛날에 박석(薄石)이 깔려있었던 조금 가파른 구간이 있는데 여기를 ‘장원급제길’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과거 합격을 기원하는 ‘책바위’가 있고, 낙동강 발원지 ‘초점(草岾)’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길을 ‘금의환향길’로도 부르고 있는데,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갈 때는 ‘장원급제길’이 되고 급제한 후 왕이 내린 합격증(홍패)을 지니고 머리에 어사화를 꽂고 내려올 때는 ‘금의환향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 과거시험은 정기적으로 치르는 식년시(式年試) 문과(대과)의 경우 3년마다 한 번 시행하며 최종 33명을 뽑는다. 그 외 부정기적으로 임금이 즉위할 때 보는 증광시(增廣試),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는 별시(別試), 임금이 문묘를 참배할 때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알성시(謁聖試) 등이 있다 하나 개인의 입신양명과 가문의 영광이 되는 과거시험에 모두가 목을 매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급제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러다 보니 사실 과거시험에 낙방하여 절망과 좌절, 실의에 빠져 낙향하면서 넘었던 수많은 선비의 애환이 쌓인 고개가 문경새재이다. 오죽하면 조선 후기의 학자이며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하였고, 시에 능하며 후진 교육에 힘썼다는 유우잠(1575~1635)이란 훌륭한 선비는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아래와 같은 시를 남겼을까? 그 심정 이해하고도 남는다. 지난해 새재에서 비를 만나 묵었더니 올해는 새재에서 비를 만나 지나갔네 해마다 여름비, 해마다 과객 신세 필경엔 허망한 명성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이렇게 과거시험 합격은 어렵다. 조선 시대 때는 음서(蔭敍) 제도가 있어 과거 급제를 하지 않고도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 있지만, 조선 시대 유일한 공식 등용문인 과거시험에 급제하기 위해 큰 노력은 물론, 온갖 방법이 동원되었는데 어떻게든 합격하겠다는 사람들의 욕망이 결국 부정행위까지 하게 된다. 과거시험 글제인 시제(試題)에 따라 그동안 공부한 지식으로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을 기술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문장을 그대로 베껴내는 일종의 표절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 세도가의 자제는 천자문을 몰라도 합격했다고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병폐와 기발한 커닝 또한 빈번히 자행되었다. 한 예로, 과거시험 부정 중에서 아주 악질적인 것은 관리를 매수하여 과거 답안지인 시권(試券)에 수험생과 4조(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이름 등 인적 사항을 적는 앞부분과 제술(製述)한 본문이 있는데 절차상 이를 분할하고 채점이 끝나면 다시 원상태로 붙이는데 그때 자기의 인적 사항을 합격 답안지에 붙이게 하여 남의 합격을 도둑질하는 적과(賊科)라는 짓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과거 시험장 분위기와 다양한 커닝 방법을 살펴보면, 수험생들은 옆 사람 것을 훔쳐보지 못하게 각각 6자(약 1.8m) 거리를 두었으며, 시험장의 좋은 자리로는 시험관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담벼락 밑이나 구석진 곳 등을 차지하기 위하여 쟁탈전을 벌이기도 하였다는데 이는 미리 준비한 쪽지 등을 감독관 몰래 슬쩍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커닝 방법으로는 눈동자를 사방팔방으로 돌려 남의 답안지를 훔쳐보는 것은 약과이고, 수진본(袖珍本)이라는 좁쌀책을 가지고 가는 것과 도포 자락 안쪽에 빼곡히 사서오경예상 답안을 써온 사람, 대리시험, 구석 자리에 앉아서 외부로부터 쪽지를 건네받는 사람, 붓두껍에 깨알 글씨로 작성한 예상 답안을 숨긴 사람, 콧구멍에 종이쪽지를 숨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시험관을 뇌물로 매수하거나, 남의 글을 베끼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빌어 제출하는 차술(借述)이라는 행위도 있었다. 이렇게 커닝하다 적발되면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시험장 안에서 책이나 문서를 가진 자가 발견되면 향후 2식년(2차례, 6년) 동안 과거시험 응시 자격을 박탈한다. 남의 제술(製述)을 빌리는 차술(借述)이나 남을 위하여 제술해 주는 대술(代述)을 한 자는 곤장(杖) 100대에 도형(徒刑-징역) 3년의 중형을 주고, 영조 때 차술·대술의 형벌을 더 강화하여 조정의 관료나 생원·진사이면 변방에 충군(充軍)하고, 유학이면 수군으로 삼았다. 낙방거자(落榜擧子)/ 이만유 괴나리봇짐 메고 청운의 꿈을 안고 떠난 한양간 과객 돌아오는 길 삐딱이 쓴 해진 갓 축 처진 어깨 꼬질한 도포 자락 문경새재 노송은 알고 있다 긴 세월 수없이 많은 사연을 간절한 염원을 그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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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문경새재 주막 이야기이만유/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옛날 길 떠난 나그네가 머물다 가는 주막은 술과 밥을 파는 주점이고 식당이면서 여관을 겸한 복합 휴게소라 할 수 있다. 주막은 외딴곳에 한두 집이 있기도 하지만, 나그네가 많이 다니는 길목에는 여럿이 모여 주막거리나 주막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문경지역에서도 유곡역 주막촌, 문경새재와 돌고개 주막거리 등이 있었으며 한양에서 과거시험이 있는 시기에는 성시(成巿)를 이루었고 특히 술청에는 팔도 사람들이 모여 북새통이 되기도 하였다. 주막은 임진왜란 후 조령원(鳥嶺院)·동화원(桐華院) 등 관설(官設) 원(院)의 기능이 쇠퇴하고 참(站)마다 참점(站店)을 설치하여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는데 조선 후기(19세기)에는 영남대로 등 큰길에는 10∼20리 간격으로 사설 주막이 많이 생겼다. 주막에는 나그네의 눈에 쉽게 띄도록 현대의 광고판 같은 주막 고유의 표시로 ‘酒(주)’ 자를 문짝 등 잘 보이는 곳에다 써 붙이거나 처마 끝에 등을 달기도 하였고 술을 거르는 데 쓰는 도구로서 싸리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 모양인 ‘용수’를 장대에 달아 지붕 위로 높이 올려 두기도 하였다. 주막은 쉼터의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특히 주막에서 제일 큰 방인 ‘봉놋방’에는 입담 좋은 사람들이 밤이 깊도록 팔도 이곳저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소식을 전해주는 이야기꽃이 피는 곳이었다. 주막에서는 술이나 밥은 돈을 받지만 잠은 공짜로 잘 수 있었는데 침구는 제공하지 않았다. 특실이라 할 수 있는 작은 방은 지체 높은 양반 손님이 차지하고 봉놋방에는 일반 백성들이 잠을 자는데 먼저 들어 온 사람이 좋은 아랫목 자리를 차지하고 그다음 들어온 사람들은 비어 있는 공간을 찾아 몸을 뉘었는데 때에 따라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한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복 없는 년은 봉놋방에 가서 자도 고자 옆에 눕는다’라는 재미있는 속담이 생기기도 하였다. 가끔 눈웃음치는 주모가 큰 엉덩이를 흔들면서 요염한 모습으로 과객을 호리는‘색주가’처럼 변질한 주막도 있었다고 하며 주막 주변에는 나그네를 상대하는 ‘들병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 ‘내외주점(안방술집)’이라 해서 여염집 아낙네가 살길이 막연하여 차린 술집으로 문을 사이에 두고 술꾼에게 순배(巡杯)로 술을 파는 술집이 생기기도 하였다. 특별한 예로 민정을 살피는 관리들이 묵기도 하였는데 이긍익(李肯翊) 지은 ‘연려실기술’에 정승 맹사성(孟思誠)이 고향 온양에서 상경하다가 용인의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시골 선비와 ‘공 당 놀이’를 한 이야기가 있기도 하였다. "무슨 일로 서울 가는공?”, "과거 보러 간당.”, "그럼 내가 급제시켜 줄공?” "실없는 소리 말당.” 한 후 헤어지고 며칠 뒤 맹사성이 과장(科場)에서 그 시골 선비 곁에 슬며시 다가가 "어떤공?”하니 그가 정승인지 알아보고 얼굴빛이 하얗게 되어 "죽어지이당.”했다는 이야기다.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인 문경새재 제 1관문과 제 2관문 사이 교귀정 못미처에도 나그네들에게 술과 밥을 팔고 잠자리를 제공하던 옛 주막터에 주막이 한 채 들어서 있다. 조선 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가 그린 ‘주막’이란 그림을 모델로 설계하여 1983년 11월 ‘조국순례 자연보도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주막에서 외상술도 먹었는데 글을 모르는 주모가 외상장부 대신 부엌 벽이나 기둥에다가 자기만 알 수 있는 그 사람의 생김새와 옷차림 그리고 외상 내용을 칼로 그어 표시해 두었다. 지금이야 신용카드를 사용하지만, 한때는 단골 술집에서 현금이 없으면 손가락으로 긋는 시늉을 하거나 "그어두세요” 하는데, 이 ‘긋는다’가 바로 옛날 주모에게서 비롯된 것이란다. 문경새재 주막은 삶의 애환과 체취가 오롯이 남아 있는 곳으로, 한 가난한 선비와 마음씨 고운 주모의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금 늦은 나이에도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했던 과거시험에 낙방(落榜)하고 실의와 지친 몸을 이끌고 귀향하는 선비가 험한 문경새재를 넘게 되었다. 노잣돈도 다 떨어진 상황에서 며칠을 굶다시피 해 몹시 배가 고팠다. 배에서는 연신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나고 허기가 져 쓰러질 형편에 처했다. 마침 주막에는 장작불 위 가마솥에 국밥이 끓고 있었다. 바람결에 묻혀오는 구수한 국밥과 달콤한 막걸리 냄새에 견딜 수 없는 허기를 느꼈다. 그러나 수중엔 무일푼, 양반 체면에 구걸할 수도 없어 망설이면서 몇 차례 그 옆을 왔다 갔다 하다가 한번 사정이나 해봐야지 하면서 주모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빈손으로 가기도 뭣해서 주막 앞에 깨어진 사기그릇을 하나 주워 엽전처럼 동그랗게 다듬어서 그걸 들고 갔다. "주모! 내 어디 어디 사는 누구인데 지금 노잣돈도 다 떨어지고 배가 몹시 고프니 이 ‘사금파리’를 어음이라 생각하고 외상 국밥 한 그릇만 주시오. 내 선비로서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다음에 꼭 갚으리다. 부탁하오” 하니, 초라하나 의젓한 선비를 본 주모는 안타까운 마음에 선뜻 "예, 드리지요. 어서 이리로 앉으십시오.”하고는 큰 그릇에 따뜻한 국밥과 막걸리 한 사발을 내어 주었다. 선비는 게 눈 감추듯 음식을 먹고는 "주모! 고맙소! 내 다음에 이 길을 다시 올 때 꼭 들리도록 하겠소” 하고 가는 길을 재촉했다. 그리곤 1년 후 한양에 갈 일이 생겨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그 주모를 찾았다. 그를 알 듯 모를 듯 그러나 반가이 맞아주는 주모의 손을 잡고 "내 그때 태어난 이후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과 술을 먹었소. 주모 참 고마웠소”하고는 그때 음식값의 몇 배를 주고 떠났다고 한다. 그때 그 동그란 ‘사금파리 어음’이 발굴되어 옛정을 듬뿍 담고 ‘옛길박물관’에 전시되어 문경을 찾아오신 관광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새재 주막/ 이만유 나그네 천근 발걸음 잠시 덜고 가는 곳 낙방 선비 깊은 시름 한숨 삭이고 가는 곳 문경새재 주막에는 장작불 가마솥이 펄펄 끓는다 정 많고 인심 좋고 마음 넉넉한 주모는 노자 떨어진 과객에게 사금파리 어음으로 국밥 한 그릇 내주고 주막 기둥에 줄 그으며 외상술도 주었다 해 질 녘 피는 연기 그림같이 아름답고 절절 끓는 봉놋방 난봉꾼 이야기에 하하 호호 팔도 웃음 밤늦도록 피어난다 문경새재 고갯길 아무리 높다 해도 어젯밤 꿈자리에 언뜻 본 임 그리며 발걸음도 가벼이 바람인 듯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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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문경새재에 봉황(鳳凰)이 날아들다이만유/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봉황(鳳凰)은 상서롭고 고귀한 뜻을 지닌 고대 중국에서 신성시했던 상상의 새로 천년에 한 번 꽃피는 대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 정도로 고결하며, 기린·거북(현무)·용과 함께 신령스러운 네 가지 동물인 사령(四靈)의 하나로 중화 문명의 상징이며 중국의 신조(神鳥)다. 볏이 있는 수컷을 ‘봉(鳳)’이라고 하고 볏이 없는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며 암수를 합해서 봉황이라 하는데 봉황이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믿었다. 봉황(鳳凰)의 생김새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전체 모습은 닭과 같고 오색 문채(文彩)를 띠고 있는데 중국 후한 때 허신(許愼)이 편찬한 자전(字典)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봉의 앞부분은 기러기, 뒤는 기린, 뱀의 목, 물고기의 꼬리, 황새의 이마, 원앙새의 깃, 용의 무늬, 호랑이의 등, 제비의 턱, 닭의 부리를 가졌다고 하였으며 ‘악집도(樂汁圖)’에는 닭의 머리와 제비의 부리, 뱀의 목과 용의 몸, 기린의 날개와 물고기의 꼬리를 가졌다고 하였다. 또 어떤 문헌에는 ‘머리 앞쪽은 수컷 기린, 뒤쪽은 사슴, 목은 뱀, 꽁지는 물고기로 용과 같은 비늘이 있고, 등은 귀갑(龜甲)과 같으며, 턱은 제비, 부리는 닭과 같다’라고 하였으며, 중국 당나라 역사서인 ‘주서(周書)’에는 봉의 형체가 닭과 비슷하고 뱀의 머리에 물고기의 꼬리를 가졌다고 하였으며, 용과 학이 교미하여 낳은 새라고도 하였다.이처럼 봉황의 모양을 각각 다르게 묘사하거나 설명한 것은 봉황이 전설 속 상상의 새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로부터 벽사(辟邪)의 신통력을 가진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방위신(方位神)으로서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가 있다. 다시 말해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일컫는데 그중 남쪽을 수호하는 남방신(南方神)은 주작으로 곧 붉은 봉황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남쪽에 주작이 그려져 있고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을 찾을 때나 건물을 지을 때도 하나의 기준이 된다. 봉황 문양은궁궐, 사찰, 백제의 금동용봉대향로, 고려청자, 민화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전통혼례식에서 봉황(닭)을 날려 보내는 등 우리 역사와 민속과 전통 속에 살아 있으며 조선 시대 때에는 성군(聖君)의 상징이기도 하였으며 청와대 와 대통령의 상징 마크가 봉황인 까닭도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라는 의미가 있다. 이렇듯 봉황은 우리들의 삶 가까이 있다. 문경에도 예외가 아니다. ‘문경새재오픈세트장’에는 실재하는 서울 경복궁(景福宮)과 똑같이 설계하여 지은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이 있다. 궁궐 남쪽에 자리 잡은 광화문 위쪽 천장을 보면 봉황이 그려져 있다. 이는 이 봉황이 궁궐 밖 사악(邪惡)한 기운이 궁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주어 왕손이 번성하고 종묘사직을 지키면서 태평성대를 이루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런 신령한 봉황이 문경새재에 살고(?) 있다. "무슨 소리야!” 하겠지만, 봉황이 있다. 이 봉황은 실재의 봉황이 아니고 신기하게도 소나무 가지가 어울려 봉황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관광객이 우연히 발견하여 알려졌는데 연간 수백만 명이 문경새재를 찾아오지만, 대다수 관광객이 이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데 이번 기회에 이를 널리 알리고 문경새재를 방문하신 모두가 봉황의 기운을 받아 횡액(橫厄)을 물리치고 건강하고 뜻하는바 모든 것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기원해 본다. 이 봉황은 바로 조선 시대 신임 경상감사가 전임 감사로부터 업무와 관인(官印)을 인수·인계받던 교인처(交印處)인 교귀정(交龜亭) 앞 노송(老松)에 깃들여 있다. 이곳을 지나면서 우연히 시선이 가거나 아니면 어떤 계시(啓示)에 의해 이를 보게 되면 하루의 일진(日辰)이 좋은 것은 물론, 복권을 사면 당첨될 확률이 높고,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취업이나 수능 등 시험을 앞둔 사람이라면 합격하거나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이 봉황을 보게 되면 좋은 기운이 3년까지 그 효험이 지속되어 만사(萬事)가 형통(亨通)한다는 입소문이 돌았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문경새재를 찾아와서 한 번쯤은 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그 외 문경에는 봉황과 관련된 지명이나 봉황과 얽힌 이야기가 많다. 마성면 신현3리 봉생(鳳笙)마을 유래를 보면 먼 옛날 안동 권씨 한 분이 처음 정착하였는데 얼마 후 세상을 떠나 마을 옆 동그란 야산에 있는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 묘터를 잡고 묘혈(墓穴)을 파는 중에 반석(盤石)이 하나 나왔다. 이 바위를 들어내니 신선의 세계에서 연주된다는 생황(笙簧) 소리가 은은히 들리면서 갑자기 봉황이 날아올랐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전설을 듣고 마을 이름을 ‘봉생’이라 불렀다. 그런데 봉생의 한문 표기를 보면, 봉황이 난 곳이라 날 生(생) 자를 써서 봉생(鳳生)으로 쓴 것이 아니라 생황 笙(생) 자를 쓴 봉생(鳳笙)으로 되어 있음은 바로 생황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서 날아오른 봉황이 훨훨 날아 조금 떨어진 산에서 울었다 하여 그 산 이름이 봉명산(鳳鳴山)이 되었다. 봉명산이 문헌상 처음 나타난 것은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현조’에 ‘봉명산은 현의 동쪽 8리에 있다’라는 기록이다. 그리고 생황과 관련된 곳으로 문경시 가은읍 선유구곡(仙遊九曲) 제8곡 난생뢰(鸞笙瀨)가 있는데 여기가 난새(鸞鳥)가 날고 생황 소리가 울려 퍼져 곧 신선의 세계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곳이다. 통일신라 시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 봉암사(鳳巖寺)가 자리 잡은 곳의 지세(地勢) 또한 봉황이 날개를 펼친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과 지난해 보물로 지정된 봉암사 일주문인 봉황문(鳳皇門)이 있다. 필자가 사는 서쪽 산 바위 위에 봉황이 자주 내려앉았다고 하여 봉암리(鳳巖里)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초임(初任)으로 3년간 문경서부심상소학교(현 문경초등학교)에서 훈도(교사)로 재직할 때 하숙집이었던 청운각 우물에 봉황이 깃들여 산다는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자란 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또 문경시 가은읍 전곡리에 있는 ‘강릉최씨 열부각(江陵崔氏 烈婦閣)’의 주인공인 ‘강릉최씨’는 소녀 시절 시서(詩書)를 배우고 예절과 행실이 남달랐는데 안타깝게도 남편이 일찍 죽게 되었다. 그때 애끓는 마음으로 지은 제문 중에 ‘봉황이 함께 날아 어울려 노래를 즐겼는데 봉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아 황이 홀로 슬피 우네’라는 구절이 있다. 강릉최씨는 제문을 읊은 이후 절식, 자결하니 모두가 열부(烈婦)라고 칭송하였고 조정(朝廷)에서 그 정절(貞節)을 기리기 위한 정려(旌閭)를 내렸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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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국악원, 내달 3일 백경우의 춤 '청운추월' 초청공연국립남도국악원은 9월 토요상설 첫 무대로 오는 9월 3일 오후 5시 백경우의 춤 '청운추월(靑雲秋月)' 초청공연을 개최한다고 31일 밝혔다.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진행하는 토요상설 '국악이 좋다'는 전통에서 창작음악까지 다양한 음악문화를 선보이고 있으며,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초청해 예술인들에게 활동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첫 무대는 민속춤의 정수 '승무'로 무대를 연다. '승무'는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다듬어진 완전한 예술의 형식을 갖춘 춤으로 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두 번째 무대는 '장구 시나위'로 무속음악에서 즉흥적인 합주음악인 시나위를 설장구와 결합해 장구의 새로운 모습을 선사한다.이어 판소리 심청가 중 심 봉사가 곽씨 부인이 죽은 후 평토제를 지내는 대목 '주과포혜'를 들려줄 예정이다.살의 액을 제거·소멸시켜 안심입명을 가져오고 희망을 선사하는 '살풀이춤', 그리고 부조화 속의 조화, 혼돈의 질서를 의미하는 기악합주 '달빛유희'가 연주될 예정이다.마지막 무대는 전통과 권위있는 사회질서를 기본적 틀로 하는 사대부계층의 젊은 선비들의 생활을 표현하는 '사풍정감'으로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이날 공연에는 주소연·정준호·민영치·신현식 등의 명창·명인들이 함께한다. 공연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공연 시작 전후 진도 읍내와 국악원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제공한다. 또한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을 위해 12월까지 공연 스탬프 쿠폰 이벤트를 진행해 참여한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기념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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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박정희 대통령과 청운각(靑雲閣)이만유/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청운각은 경북 문경시에 있는 고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의 교사 시절 하숙집이다. 대한민국 5∼9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 대통령이 1937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1937.4∼1940.3월까지 3년간 문경서부심상소학교(현 문경초등학교)에서 훈도(訓導-일제 강점기 초등학교의 교원)로 초임 재직할 때, 인정 많고 남자 못지않은 호탕한 성격을 가진 김순아(金順牙) 아주머니 하숙집으로 1940. 4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인의 길을 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기거하셨다. 이 하숙집 건물은 1928년(소화 3년)에 건축되었으며 1978. 10월 경상북도 보존 초가옥 제1호로 지정한 25평 규모의 초가집이다. 청년 박정희 훈도는 매일 새벽 6시가 되면 하숙집에서 가까운 문경읍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잣밭산에 올라 기상나팔처럼 트럼펫을 불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일찍 일어나 공부하고 주민들은 부지런히 일하여 대대로 물려받은 가난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청운을 품고 있었다. 오늘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새마을운동”이란 위대한 꿈이 이미 젊은 박정희 가슴 속에서 싹트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청운각 외벽 담장 사이에 살구나무 고사목 둥치 하나가 투명 상자 안에 보존 전시되어 있다. 이 살구나무는 박정희 훈도가 하숙할 당시 탐스러운 살구가 주렁주렁 열렸고 이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고 사색하던 반려목(伴侶木)같이 애정을 가진 나무였는데, 1979년 10월 26일 서거한 이틀 뒤 낙엽이 다진 늦가을 나목에서 때 아닌 두 송이 살구꽃을 피우고 난 뒤 대통령을 따라 생을 마감하고 고사하였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나무를 "충절의 나무”라고 불렀다. 청운각에는 대문채 옆에 디딜방아가 놓여 있다. 1978년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훈도 시절의 추억에 잠겨 이곳 저것을 둘러보시다가 디딜방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반가운 표정으로 "옛날 것하고 똑같구먼!” 하고는 한참 상념에 잠겼을 때 언뜻 눈시울을 붉혔다고 하는데, 이는 어릴 적 구미시 상모동 생가에도 디딜방아가 있었고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컥하는 감정이 벅차 올랐기 때문이었다. 디딜방아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박정희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어머님이 박정희를 임신했을 때 연세가 45세였다. 늦은 나이에 남세스럽기도 하고, 원치 않은 임신에다가 가난한 살림에 6남매를 두고 있는 처지에서 또 아이를 갖는 것이 부담되었다. 더구나 같은 시기에 시집간 딸도 임신했다. 옛말에 한 대들보 밑에 두 생명이 태어나면 둘 중 어느 한쪽 아이가 잘못된다고 하는 속설이 있기도 해서 딸을 위해 유산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를 지우려고 남몰래 진한 간장을 한 사발을 마시기도, 섬돌과 언덕에서 굴러떨어지기, 밀기울 끓여 먹기, 버들강아지 뿌리를 달여 먹고 기절하기도 하고, 썩은 초가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검붉은 빛깔의 빗물인 지랑물을 마시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낙태가 되지 않아 최후의 방법으로 디딜방아 공이에 배를 대고 충격을 주었다가 허리를 다쳐 고생하였지만 끝내 아이를 지울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디딜방아 앞에서 숙연해지고 눈물을 보인 것이 그런 고난의 시절을 보낸 어머니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이 점지해 준 생명을 인간이 어찌하겠는가? 그것도 유명한 지관(地官)들은 물론이고 조선 왕업을 도운 무학대사가 대통령 생가가 있는 금오산(金烏山)을 보고 두 왕이 태어날 명당이라는 뜻의 "금오산 이왕설(二王說)”을 남겼는데 그 주인공으로 태어날 왕의 기운을 사람이 지울 수가 없었다. 천명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1917년 같은 해 7일여 차로 어머니는 박정희를 출산하고 누나 역시 아이를 출산하였다. 박정희 출생 시 아이의 몸이 다른 아이에 비해 까맣고 눈만 반짝거렸다는데 사람들은 어머니께서 임신 때 낙태하려고 검은색 간장과 지랑물을 먹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조부의 묘터가 하늘이 정해준 제왕지지(帝王之地) 명당으로 금오탁시(金烏啄屍) 발복(發福), 즉 금오(金烏)는 금까마귀로 금오산(金烏山) 정기를 타고 태어났기 때문에 태양의 신 삼족오(三足烏)를 닮아 까맣다고 하였다. 박정희 훈도가 하숙집에서 즐겨 드신 음식은 칼국수, 수제비, 비름나물이고 술은 막걸리를 좋아했다. 특히 비름나물 무침을 좋아해 하숙집 여주인이 수시로 밥상에 올렸다고 한다. 어린시절 학교까지 20여 리 시골 산길을 걸어 다녔는데 하루는 몹시 배가 고파 집에 당도하니, 어머니께서 바가지에 비름나물을 비벼서 막 드시려다가 아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는데 보리쌀이 대부분이고 조금의 쌀이 섞인 밥에 비름나물과 참기름을 넣고 비빈 비빔밥의 맛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별미였다. 이후 청와대에서 육영수 여사는 비름나물을 구해 비빔밥을 해드렸다. 그러나 서울 시장에서는 비름나물을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자 씨앗을 구해 작은 밭을 일구고 재배를 했다. 박대통령은 보리와 쌀 반반인 밥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빈 비름나물 비빔밥을 그 어떤 진수성찬이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맛있게 드셨다고 전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회생활 첫발을 디딘 문경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교사 생활을 끝내고 문경을 떠난 이후 서거할 때까지 9회 정도 문경을 방문하셨다고 하며(청운각 관리소장 진술) 문경에 오실 때마다 늘 청운각을 들리셨다고 한다. 서거하기 전 1978년이 마지막 방문이 되었다. 박남우 청운회 회장 증언에 의하면 당시 김수학 경북지사가 조심스럽게 문경새재 올라가는 도로 포장을 건의하였다. 전국토의 산업화를 서두르는 대통령께서 예외로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스며있는 옛길 문경새재 도로를 포장하지 말고 흙길 그대로 잘 보존하라 당부하였다. 1976년 국무회의에서도 문경새재의 옛 정취가 사라져서는 안된다며 도로포장 금지를 엄하게 지시했다고 하였다. 아마도 훈도 시절 제자들과 소풍을 오고 시간 날 때마다 자주 찾아본 문경새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추억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래서 문경새재는 지금까지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전국에서 연간 수백만 명이 찾아와서 온 가족과 벗들이 맨발로 걷는 명소, 문경의 랜드마크가 된 것이다. 사람이 생을 영위하면서 10년 앞을 예견할 수 있다면 다 부자 되고 성공할 것인데 대다수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훌륭한 지도자는 달랐다. 선견지명으로 50년, 100년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판단에 의해 지금 우리 문경인들은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우 김지미는 백 년에 한 번 나는 미인이고, 박정희는 천 년에 한 번 나는 위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문경에는 박정희 훈도와 관련되어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다. 제자들과 진남교로 소풍 갔다가 위험을 무릅쓰고 익사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한 일과 하숙집으로 찾아 오거나 학교에서 일본인 교장이나 훈도가 없는 수업 시간 중간 중간 민족혼을 일깨워주는 말씀을 자주 하였다고 제자들은 생생하게 전한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흔적으로는 문경새재 입구에 "문경새재”라는 휘호 표시석이 있고 1978년 청운각에 와서 기념 식수한 전나무가 당당하게 서 있다. 청운각 공원 중앙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북과 장구 형상의 "고부이가(鼓缶而歌)”라는 조형물이 있다. 鼓缶而歌는 북 치고 장구 치고 노래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대동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주역에서는 고난과 역경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혁신의 의미가 담겨있다. "하면 된다.”라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박대통령의 업적을 가슴에 얹어본다. 세계인이 기억하는 박정희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다.” 라며 "인류가 이룩한 성과 가운데 가장 놀라운 기적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지도력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세계 정상의 석학이나 정치가들의 말을 반추해 본다. 우리는 5천 년 가난을 물리치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 바친 고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과 유훈을 이어받아 문화강대국으로써 우뚝 섰다.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세세년년 발전과 번영을 위해 정진해야 한다. 청운각은 잠시 머물다 간 하숙집이 아니다. 청운(靑雲), 푸른 꿈과 드높은 이상(理想)이 시작된 공간이며 민족정신을 고양하는 산 교육장이다. 청운각에는 해마다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일과 11월 14일 탄생일에는 제자들의 모임인 청운회가 주관하는 추도제 및 숭모제를 올리고 있다. 문경민의 충절이 깃든 문경의 자랑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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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문희경서(聞喜慶瑞)의 고장 문경(聞慶), 지명 이야기이만유/향토사 연구원 문경의 지명은 신라시대에는 고사갈이성, 관현(冠縣), 관문현(冠文縣)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관산현, 고려시대 때는 문희(聞喜)였다가 문경(聞慶)으로 바뀌어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문경(聞慶)으로 불리어왔다. 문희, 문경은 들을 문(聞), 기쁠 희(喜), 경사 경(慶) 자로 기쁘고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기분 좋은 지명이다. 조선시대 영남의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바라며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나 전국의 보부상들이 대박을 꿈꾸며 팔도를 다닐 때 주로 이용했던 고갯길이 문경새재다. 한양으로 가는 대표적인 큰길로 추풍령, 문경새재(조령), 죽령이 있었지만, 속설에 의하면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으로 가면 죽 쓴다거나 죽 미끄러진다고 하여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으로 가는 길을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인지 예로부터 문경은 기쁜 소식을 듣고 경사스러운 일의 조짐이 있다는 뜻으로 "문희경서(聞喜慶瑞)의 고장”이라 하였다. 그리고 또 문경에는 "문경삼관(聞慶三關) 대한삼경(大韓三慶)”이란 말이 있다. 선견지명이 있는 옛사람들이 그 지방의 역사와 문화, 풍토와 지형, 천문지리를 관찰하여 미래를 미리 짐작하여 숨은 뜻을 지명(地名)을 통하여 전한다는데 그래서일까?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관문 3개 있고, 그 문경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적인 큰 경사 소식을 3번 듣는다는 예언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첫 번째가 1361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경상도 안동으로 몽진하여 인근을 순행 중 문경 주흘산 어류동(御留洞)에 머물 때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 제1경이며, 두 번째는 주역학의 종장(宗長) 야산(也山) 이달 선생이 지리산에 계실 때 멀리 문경 쪽에서 서기가 비치므로 천기를 받아 나라에 경사가 있을 징조임을 알고 1945년 8월 14일 전국의 제자들을 문경으로 모이게 해서 꼬끼오! 꼬끼오! 하며 닭춤을 추었는데 이를 보고 제자들이 영문을 몰라 했으나 그다음 날 광복의 기쁜 소식을 들은 것, 다시 말해 꼬끼오! 닭이 울어 새날이 밝았다는 신호를 보낸 조국광복의 제2경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은 나라의 경사 제3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랫말처럼 남북통일이 될 것인데 그 소식도 문경에서 제일 먼저 듣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사서(史書)에 기록된 문경의 지명유래를 시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선사시대(先史時代) 신석기시대부터 집단마을을 형성하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며 특히 산양 금천 주변 등 청동기시대 유물인 성혈과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 삼한시대(三韓時代) 마한·진한·변한 중에 변(弁), 진(辰)의 읍락국가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진한계 근기국(勤耆國)은 산양 지역이고, 진한계 호로국(戶路國)은 점촌과 호계지역이며, 변진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은 상주 함창지방이고 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은 함창 또는 용궁지역이나 우리 시의 일부가 포함된다. ○ 삼국시대(三國時代) 서기 505년(지증왕 6년)에 신라 지방제도 확정으로 관문현(冠文縣)・관현(冠縣)・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라 불렀으며 현재의 문경・마성지역이다. 가해현(加害縣)은 가은・농암지역이며 호측현(虎側縣) 혹은 배산성(拜山城)은 점촌시・호계면 지역이고, 근품현(近品縣)은 현재의 산양・산북지역이다. 고동람군(古冬攬郡) 혹은 고능군(古陵郡)은 상주시 함창읍(咸昌邑) 지역이며 점촌과 영순면의 일부 지역이 여기에 포함된다. 축산현(竺山縣) 혹은 원산(圓山)은 예천군 용궁지역으로 영순면의 일부 지역이 여기에 포함되며 난산현(蘭山縣)은 동로・산북면 일부가 포함된다. ○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서기 757년(경덕왕 16년)에 신라 지방제도가 9주 5소경, 117군, 293현으로 개편되면서 관산현(冠山縣)이 되었는데 현재 문경・마성지역으로 고령군(古寧郡 : 현 함창)의 영현이다. 가선현(嘉善縣)은 가은・농암지역으로 고령군(古寧郡)의 영현이다. 호계현(虎溪縣)은 점촌과 호계면의 일부 지역으로 고령군(古寧郡)의 영현이다. 가유현(嘉猷縣)은 산양・산북지역으로 예천군(醴泉郡)의 영현이다. 안인현(安仁縣)은 예천군 영현으로 동로면 일원과 옛 화장면 일원이다. ○ 고려시대(高麗時代) 신라 경덕왕이 관산현(冠山縣)이라 한 것을 940년(고려 태조 23)에 문희군(聞喜郡)으로 개칭하고 983년(성종 2년)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하였는데 문희군(聞喜郡)과 가은현(加恩縣), 호계현(虎溪縣), 산양현(山陽縣), 영순현(永順懸)은 상주목의 속현이 되고 안인현(동로면과 옛 화장면)은 예천군에 폐합되고, 1018년(현종 9)에 상주에 편입시켰다가 후에 문경군(聞慶郡)으로 고쳤다. 공양왕 2년(1390)에 문경군(聞慶郡)에 감무를 두었으며 가은현(加恩懸)은 상주의 속읍에서 문경의 속읍이 되었다. ○ 조선시대(朝鮮時代) 서기 1414년(태종 14년)에 8도 체제를 완비하였는데 문경현의 감무가 현감으로 바뀌고 호계현을 합병하였다. 가은현은 문경현의 속현으로, 산양과 영순현은 상주의 속현으로 있었으며 1892년(고종 29년)에 문경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5월 26일에 8도 체제가 23부로 개편되고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을 군으로 지방행정 체제를 단일화하였다. 이때 문경이 상주, 용궁, 예천 등 이웃 군에 할양되어 문경군이 행정 편제상 없어졌다. 1896년(건양 원년) 8월 4일에 23부 체제가 다시 13도로 개편되고 문경군이 환원되었다. 1906년 1월 19일에 예천군의 동로면과 화장면이 문경군에 편입되었고 1906년 9월 24일 상주군의 산서, 산남, 산동, 산북, 영순면을 편입하였다. ○ 근․현대시대(近․現代時代) 서기 1914년 4월 1일에 용궁군의 서면과 함창읍의 동면 일부를 편입 현재의 시계(市界)를 형성(11면, 129리)하였고 1933년(경상북도령 33호)에 신북면이 문경면에 통합(10면, 129리)되었고 1949년 3월 10일에 문경군청이 문경읍 상리에서 호서남면 점촌리 232로 이전하였다. 1956년 7월 8일에 호서남면이 점촌읍으로 승격(법률 제393호)되었고 1963년 1월 1일 농암면 삼송리가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편입되었으며 1968년 9월 3일 군 청사를 모전리 59-2번지로 신축 이전, 1973년 7월 1일 호계면 봉정리를 산양면으로 편입(대통령령 3789호)하였고 문경, 가은(이안면 저음리를 가은읍에 편입)이 읍으로 승격(대통령령 제6543호)되었다. 그리고 1986년 1월 1일 점촌읍이 호계면 별암 2리를 편입하여 점촌시로 승격(법률 제3798호)되었고 1989년 1월 1일 상주시 함창읍 윤직리 일부를 점촌시에 편입, 1995년 1월 1일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하여(법률 제4774호) 문경시가 되었다. 1999년 1월 1일 신기. 대성. 공평동을 통합하여 신평동을 설치하였고 2004년 1월 1일 점촌동, 중앙동, 신흥동, 신평동, 모전동을 점촌1·2·3·4·5동으로 동 명칭을 변경하였다. 현재 5개 동과 2개 읍, 7개 면이 있다. 그런데 문경의 지명 변천 과정을 보면서 눈여겨 볼 흥미롭고 특별한 것이 있다. 1895년(고종 35년) 5월 26일에 8도 체제가 23부로 개편되고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을 군으로 지방행정 체제를 단일화하였다. 이때 문경이 상주, 용궁, 예천 등 이웃 군에 할양되어 ”문경군”이 행정 편제상 없어졌다. 다시 말해 우리 문경이 우리나라 역사상 1년여간 증발, 존재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1896년(建陽 元年) 8월 4일에 23부 체제가 다시 13도로 개편될 때 문경군이 환원되었으니 망정이지 우리의 삶의 터전인 문경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질뻔한 아찔한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문경(聞慶)이란 지명이 문경현지(聞慶縣誌)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 보면 "恭愍王聞捷報於本縣仍改今名” 이란 기록이 있다. 이는 고려 제31대 공민왕(恭愍王 1330~1374, 재위 1351년∼1374년)이 원나라 말 농민반란군인 홍건적(紅巾賊)의 난(亂)을 피해 복주(福州:현 安東)으로 파천(播遷)했다가 지역 순방 중 주흘산(主屹山)에 머물 때 홍건적을 물리치고 송경(松京: 現 開城)을 수복했다는 승전보 듣게 된 곳이라 하여 "들을 聞, 경사 慶” 자를 써서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 곳”으로 문경(聞慶)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삼국사기 권 34 잡지3에 "冠山縣 本冠縣 一云冠門縣 景德王改名 今聞慶縣”-"관산현은 본래 관현 또는 관문현이라 한다.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지금의 문경현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今聞慶縣(금문경현)”를 주목해 보면 위의 공민왕 때 문경이란 지명을 처음 불리게 되었다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삼국사기(三國史記)는 1145년(17대-인종 23)경에 김부식(金富軾)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것인데, 그때 이미 문경이라 지명을 사용하였으니 편찬 그 이전부터 문경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공민왕이 1361년 11월 19일에 홍건적이 침략, 몽진길에 올라 동년 12월 15일에 안동에 도착, 1362년 2월 신축일에 환도했다면 1362년 공민왕 환도 연도와 1145년 삼국사기 편찬 연도와의 차이는 217년이다. 정리하면 공민왕이 문경 땅에 머문 시기보다 217년 전에 이미 문경이란 지명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018년(현종 9)에 상주에 편입시켰다가 후에 문경군(聞慶郡)으로 고쳤다.”라는 기록으로 비교해도 127년의 시차가 있다. 정사와 설화로 이해해야 할지? 규명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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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기록한 통역관이자 서화가, 청운 강진희청운菁雲 강진희姜璡熙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1851년에서 1919년까지 살다 가셨으니 일면식이 있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와 조우하게 된 것은 2022년 5월 29일 서울 강남의 가로수길에 위치한 예화랑에서였다. ‘연緣, 이어지다’라는 제목으로 사후 백여 년만에 처음 열린 기념전이었다. 예화랑 김방은 대표가 청운 선생의 피를 이어받은 혈연관계이고, 이혜신 큐레이터가 관련 자료들을 수집했으며,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대표이사가 소장하고 있던 청운의 저서 '악부합영樂府合英'을 전시회에 내놓은 연유로 ‘인연’이 강조됐다. 예화랑 측은 한자로 쓰여진 악부합영을 고전번역원에 맡겨 번역해 소개하고, 관직에 있으면서 서화와 판소리 분야에서도 활동했던 강진희 선생의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그를 조명했다. 청운은 제대로 부각된 적이 없지만,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어학 실력도 뛰어나 한문 지식을 바탕으로 중국어사전을 펴냈으며,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드물게 일어와 영어를 구사해 1886년 일본공사접응관차를 거쳐, 1887년 통역원으로 박정양1841~1904 주미공사의 미국 수행을 맡았다. 주로 일어로 미국측과 소통했고, 그 내용을 우리측에 통역했다. 어떤 생김새였을까? 궁금해하던 기자에게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1888년 4월 26일 조지 워싱턴1732~99의 생가 버지니아 주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을 찾았을 때의 모습이다. 박정양 공사, 이종하 무관, 이하영 서기관과 나란히 섰는데, 그들보다 훨씬 큰 체격이다.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날 정도로 키 차이를 보인다. 서화에 능했던 통역관은 처음 마주하는 서구의 문명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카메라가 없던 나라의 주재원이었던 까닭이다. 당시 서구의 과학문명은 당시 조선인들에겐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박정양보다 5년 앞서 미국을 방문했던 조선보빙사가 겪은 일화는 웃음짓게 만든다. 1년 뒤 갑신정변의 주범으로 멸문지화를 당하는 홍영식을 단장으로 민영익, 서광범, 유길준 등 20대의 조선 엘리트들이었다. 서구 문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춘 인물들이었음에도 그들이 받은 문화 충격은 컸다.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는 이해불가였고, X-RAY는 "귀신의 소행”이었으며, 엘리베이터는 경악 그 자체였다. 사절단은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 체스터 아서를 만나자 넙죽 큰 절을 해 미국 신문에 그 모습이 실리기도 했다. 식탁에 흉기인 포크와 나이프가 오르는 건 "상스럽다”고 느꼈고, Y-shirts에 대해서는 "편리하겠다‘며 호감을 표했다. 청운은 큰 문화 간극 속에서 1년간 미국에 체류하며 목격한 풍경을 머릿속에 각인했다가 조선에 돌아와 화선지에 붓으로 옮겨 소개했다. '미사묵연-화초청운잡화합벽'이다. 청운은 1911년부터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1861~1919,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晋1853~1920 등과 서화미술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청운은 금석학에 밝아 위창 오세창1864~1953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덕분에 위창은 전서와 예서를 익혀 ‘당대 최고의 서예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청운의 인물됨과 생애에 대해서는 남겨진 자료가 많지 않다. 이혜신 큐레이터가 찾은 김영욱의 2017년 논문 '청운 강진희의 생애와 서화 연구'에 서화가로서의 청운이 소개돼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청운의 저서 악부합영은 판소리 애호가로서의 청운의 면모를 보여준다. 두 자료를 근거로 그를 형상화해본다. 강진희는 35세에 관직에 진출해 60세까지 법부와 학부의 요직에서 관원으로 일했다. 지금으로 치면 법무부와 교육부에 근무한 셈이다. 61세부터는 서화에 전념해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진주 강씨姜氏인 그의 가문은 누대로 의관醫官 집안이었다. 모친 역시 의관 집안이었다. 조모는 역관 집안 출신이었다. 청운은 의관 대신 역관을 선택했다. 조모인 천녕 현씨玄氏 가문의 영향이 컸다. 왜학倭學을 전공해 잡과에 합격해 사역원 종 9품직인 참봉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현재의 일어 통역관이었다. 당시 주미 공사관에는 참찬관 이완용1858~1926, 서기관 이상재1850~1927, 번역관 이채연1861~1900 등 10인이 근무했다. 이 당시 청운은 이미 전서에 조예가 있었던 모양이다. 강민기의 논문 '근대 전환기 한국 화가의 일본화 유입과 수용'에 한 일화가 소개된다. 청운이 미국행 배를 타기 위해 요코하마에 들렀을 때 일본 화가 야스다 베이사이安田米齌1845~88를 만나 '추경산수도' 1점을 선물 받고 자신의 전서 글씨를 선물한 까닭이다. 주제에 대한 접근의식도 집요했던 모양이다.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배에 19일간 동승했던 훗날의 주한미국대사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의 목격담에 따르면, 청운은 가벼운 옷 차림으로 여객선의 홀에 나가 누구에게나 말을 걸고 다녔다. 알렌은 그런 청운을 "the snoop”으로 표현했다. 꼬치꼬치 캐묻고 다니며 탐색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청운은 그만큼 호기심이 많았으며 알고자하는 열망이 컸던 인물로 이해된다. 청운은 미국 체재 시절 박정양을 수행해 28개 공사관을 방문하며 외교 활동을 벌였고, 이상재, 이채연 등과 볼티모어 등 여러 지역을 유람하며 서양문물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1889년 귀국해 1910년 한성고등여학교 서기에서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법부와 학부에서 활동했다. 어학 실력을 바탕으로 '국한회어國韓會語' 편찬을 돕고, 역사와 지리 서적 간행에도 관여했다. 61세이던 해부터 1919년 타계하기까지 9년간은 서화가의 길을 걸었다. 앞서 워싱턴 주재 시절에도 장승업 풍의 '묵매도墨梅圖', '괴석국란도怪石菊蘭圖' 등의 수묵화를 그렸다. 1888년에는 훗날 순종이 되는 동궁 이척1874~1926의 15번째 탄강일을 축원하는 '승일반송도昇日蟠松圖'도 그렸다. 오세창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서 "강진희는 글씨는 전서와 예서를 잘 썼고, 그림은 매화를 잘 했다”고 평했다. 강진희의 생애를 연구한 김영욱은 "강진희 30대의 회화는 화면의 구성과 소재에서는 19세기 화단의 경향을 수용하고, 맑은 담묵을 즐겨 사용해 담담한 느낌의 남종문인화풍을 구사했다. 제작 목적에 맞는 소재를 포착하고 간략한 필치로 묘사하여 그림의 이야기를 잘 전달했다. 또한 전각의 인장을 회화와 연계시켜 시·서·화·인 ‘四全’을 지향한 작화 방식은 서화가 시기까지 지속되었다.”라고 평했다. 귀국한 후 머리 속의 풍경들을 화첩으로 남겼다.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 '종남귀래도終南歸來圖' 등이다. 이 화첩은 1983년 ‘최초의 미국견문화美國見聞畵’라는 제하로 동아일보에 보도됨으로써 처음 알려졌다. 화차분별도는 워싱턴 공관에서 멀리 두 열차가 오고 가는 풍경을 보고 그린 것이다. 조선에서 미국 워싱턴으로 가는 여정 중에 함선과 기차를 경험했으나 두 열차가 교행하는 모습은 겁이 날 정도로 신기했던 모양이다. 제목 옆에 ‘웃음이 나왔다’라는 뜻의 ‘부지일소付之一笑’를 날인했다. 철도와 기차를 중심으로 많은 배경은 생략하고 간략한 필치로 스케치했다. 이국적 풍경의 핵심만 포착하여 묘사함으로써 그림의 주제를 뚜렷하게 전달했다. 청운 강진희는 서화가 외에 판소리 연구가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이 부분이 의외이다. 당시 선비들이 남종화의 영향을 받아 그림 속에 시를 쓰던 ‘화중유시畵中有詩’의 인문화人文畵에 몰두하는 게 트렌드였던 만큼, 서書와 화畵에 관심과 재능을 보인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지만, 판소리에 관심을 가진 건 매우 이례적인 경우인 까닭이다. 그냥 즐기기만 한 수준이 아니라 전문 서적을 펴냈을 정도였으니 놀랄만 하다. 입으로만 전해져 오던 속요들의 가사를 채록하고 수록한 악부합영樂府合英이 그 업적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대목이다. ‘악부’는 노래가사를 한시 형태로 옮긴 것이다. 고려 때 이제현李齊賢1287~1367 이래로 몇몇 학자들이 이 작업을 해왔다. 한시漢詩의 기본 형식은 한 구句당 5자나 7자로 이루어지지만, 악부 한 편이 몇 구로 구성되는지, 한 구는 몇 자로 이루어지는지 등에 대해 정형定型은 없었다. 노래가사의 길고 짧음에 따라 시가형태도 들쭉날쭉이었다. 청운의 악부합영은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각 부마다 자신의 필명인 일소헌一笑軒의 이름으로 제사題詞를 지었다. 신헌申櫶과 신위申緯가 채집한 곡들을 정리하며 ‘푸른 갈대 수풀을 배로 헤치고 다니며 소악부小樂府를 읊조리다碧蘆吟舫小樂府’라고 표현하고, 자기가 기록한 곡들에는 ‘푸른 갈대서리를 배를 타고 다니며 소악부를 읊고 후기를 짓다題碧蘆吟舫小樂府後’라고 썼다. 벼슬아치로서 판소리를 연구했던 송만재1788~1851가 광대놀이를 보고 지은 시, 관우시觀優詩를 옮기며 감상평을 덧붙이고,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세상에 떠도는 유행가 아홉 수九歌’는 스스로 채록했다. ‘합영合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여러 영걸들의 합작품‘이라는 점을 나타낸 것이라 풀이된다. 청운은 악부합영의 서문에서 "일소헌一笑軒이 소악부小樂府를 모방하다.”라고 스스로 소악부의 형식을 따랐음을 밝히고 있다. 소악부는 한시의 절구체絶句體를 고수하는 악부이다. 즉, 시처럼 절구 형태를 따른 작은 시小詩의 형식이다. 악부합영은 구전으로 전해오던 우리 노래를 한자로 기록한 것이다. 당시 소리하던 사람들이 한자를 몰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청운의 작업은 의미가 크다. 선대인 신위, 신헌과 후대로서 천재 소리를 듣던 육당 최남선1890~1957 등도 같은 작업을 한 바 있다. 청운은 그들이 빠트려 국문가사만 전해져오던 곡들의 가사를 한자로 옮겨 기록했다. 그의 한문 실력이 작용했다. 일소헌一笑軒이 기록한 속요 46수에 벽로운방소악부碧蘆韻舫小樂府 40수 그리고 여산노초(礪山老樵, 송만재)의 관우시觀優詩 50수를 묶었다. 청운은 기록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하紫霞 신위申緯 선생이 소요(小謠 : 우리나라 민요)를 채집하여 <벽로운방 소악부>라 명명한 칠언절구 40 수는 가사가 오묘하고 가락이 뛰어났기 때문에 세상에 전해졌다.”라고 선대의 업적을 칭송하고, 자신이 기록한 속요 46수는"무더위에 비까지 와서 후텁지근한 날, 풍등風燈을 앞에 두고 우연히 남악주인(南岳主人, 최남선, 1890~1957)이 찬정撰証한(골라서 정한) 가곡(歌曲, 원 제목은 歌曲選)을 읽고, 그 가운데서 무명씨無名氏가 지은 것만을 찾아내어 국문(한글)은 버리고 한자로 문장을 짓고 압운(押韻, 시가에 규칙적으로 운을 다는 일)까지 해서 뜻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세히 서술하고자 하였다.” 청운은비록 칠언절구의 형식을 빌려서 쓰기는 했지만, 노래의 원 맛을 제대로 낼 수 있을 것인지, 걱정하고 있다. 다만 ‘변변치 않은布鼓雷門’ 작품이지만, "꽃그늘 아래 술동이를 앞에 두고 혹시라도 지음자知音者가 한번 목청껏 뽑아주기를 기다리노라.”라며 겸손을 보였다. 서언의 말미에는 중국 강소성의 "난정蘭亭에서 왕희지가 수계修契한 지 26번째 계축년(1913)에 고송유수관 주인古松流水館 主人이 홍두紅荳 꽃 아래서 글제를 쓰다.”라며 한껏 고양된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악부합영의 모두에 밝힌 서언緖言에도 그런 감정이 드러난다. "음악은 울적함을 풀어주고 노래는 마음을 드러내는데, 모두 감정에서 나온 것이다.시詩에 읊고 감흥하는 것에 의한 비유가 있다면음音에는 고음과 저음 및 맑은 소리와 탁한 소리의 구분이 있다. 이것은 시대에 따라 기풍氣風이 변하는데,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성운聲韻이다. 광대가 다른 사람을 흉내내고,상말로 대사를 하고 거리에서 노래하는 것은, 자기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입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광대가 소리를 길게 빼서 노래하고 악기를 두드려서 연주하여 권선징악을 표현하는 데서 비분悲憤한 감정을 일으키니, 즐거운 데서 즐거워하고 슬픈 데서 슬퍼하게 된다.그러므로 음악을 듣고 정치의 옳고 그름을 알게 되니, 어찌 음악을 얕잡아 볼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음악은 국문이 아니면 가락을 만들 수 없어서 곡조를 맞추기 어려우니, 시로 번역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이번에 국문을 버리고 압운押韻한 것은 비속함에서 벗어나서 우아함을 얻으려는 것이다. 시경詩經의 작자가 민요를 채집했던 이유도 어찌 이와 비슷하지 않았겠는가. 구전되던 노랫말을 한문으로 기록한 것은 "비속함에서 벗어나 우아함을 얻으려는” 취지라고 언급했다. 문자가 권력이던 시절의 인식이다. 이제 청운의 작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자. '임의 자취 사라진 꿈夢無跡'은 어쩐지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라는 가곡을 연상시킨다. 夢爲我請遠方君 꿈이 날 위하여 먼 데 임을 데려왔건만 不勝欣起影無存 기쁨에 겨워 일어나니 그 모습 사라졌네 君或怒而飄然去 임이 혹시 노해서 홀연히 가셨는가 如何覺來不見痕 잠에서 깨니 자취가 보이지 않네. '문밖에 나와서 기다리다出門望'는 친구를 그리며 기다리는 정을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夜雨花開酒初熟 밤비에 꽃은 피고 빚은 술도 막 익었네 琴朋留約帶月回 벗이 거문고 가지고 달이 뜰 때 온다 하니 分付兒童仔細看 아희야, 자세히 보아라 茅檐月與故人來 초가집 처마에 달이 뜰 때 벗도 함께 오는지 '당신이 직접 오세요宜身至前'는 당시 여인으로서는 당찬 모습을 담았다. 莫倩他人尺素馳 남에게 편지 전하지 마시고 當身曷若自來宜 당신이 직접 오시면 좋겠어요 縱眞原是憑傳札 아무리 진심을 편지로 전해도 成否從遠未可知 참인지 아닌지 알 수 없거든요 '백마는 울고 아가씨는 옷을 잡고白馬靑娥'는 "백마는 가자 울고 해는 기울어”라는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欲去長嘶郎馬白 낭군의 백마는 가자고 길게 울고 挽衫惜別小娥靑 어여쁜 아가씨는 옷을 잡고 이별을 아쉬워하네 夕陽冉冉銜西嶺 석양은 뉘엿뉘엿 서산에 기울고 去路長亭復短亭 갈 길은 멀고도 머네 '나비야 청산 가자胡蝶靑山去'는 노랫말이 일품이다 白胡蝶汝靑山去 흰 나비야 너도 청산 가자 黑蝶團飛共入山 호랑나비야 떼지어 함께 청산으로 날아가자. 行行日暮花堪宿 가다가 날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花薄情時葉宿還 꽃이 푸대접하면 잎에서라도 자고 가자 황진이의 '벽계수碧溪水'는 청운 덕에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진 가사이다. 마지막 연만 "명월明月이 만건곤滿乾坤하니 쉬어감이 어떠하리”로 바뀌었다. 대중성을 의식한 소이일 것이다. 靑山影裏碧溪水 청산 그림자 속의 벽계수야 容易東去爾莫誇 동쪽으로 쉬이 흘러감을 자랑마라 一到滄海難復回 푸른 바다로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데 滿空明月古今是 온산 가득 밝은 달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네 '동짓달 긴긴 밤冬至永夜'은 황진이黃眞伊가 지은 애절한 연시戀詩이다. 국문으로 전해져오던 가사를 청운이 한자로 옮겨 적었다. 截取冬之夜半强 동짓달 기나긴 밤 절반을 애써 잘라서 春風被裏屈蟠藏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말아 두었다가 燈明酒煖郞來夕 등 밝히고 술 데워 놓고 임이 오신 날 저녁에 曲曲鋪成折折長 굽이굽이 길게 펴리라 청운은 채록곡마다 직접 제목을 지어 붙이고 작사가의 이름을 명기했다. 없는 경우에는 ‘무명씨’로 표기했다. 신위 등 선대 기록자들에게는 헌사의 의미로 직접 절구를 지어 올렸다. 청운은 악부합영의 의미를 ‘기록’과 ‘전승’으로 보았다. "문장의 인연”을 살리려는 또 다른 예술의 장르가 아닐 수 없다. "인간 세상의 백년은 천상의 하루에 불과할 뿐인데, 더구나 그 하루 동안의 영고성쇠와 희로애락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민요를 노래로 전할 경우에도 흥망성쇠에 따라 존속되거나 사라지는 안타까움이 있다.시구詩句는 오랜 시일을 세상에 남아 있으니, 사람에게 문장의 인연은 참으로 귀중하지 않겠는가.” 송만재가 광대놀이를 보고 쓴 '관우희오십수觀優戱五十首'는 광대패의 소리와 재담, 재주를 보고 느낀 저자의 감상문 형식이다. 줄여서 '觀優詩'라고 부르는 그 글에는 영산(靈山, 혹은 단가短歌)에 대한 디테일한 평이 들어있어 후대의 판소리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영산은 놀이판에서 목을 풀 때의례적으로 하는 몇몇 재담과 타령打令을 포함하는 여러 곡의 혼칭混稱이다.요령要令은 광대가 재주를 부릴 때 하는 재담과 발림이다. 觀優詩는 광대패의 놀이를 눈 앞에서 직접 보듯 하게끔 묘사했다. "거문고 타고 피리불며 촛불 밝히고 밤새 노는데, 서늘한 정자와 높은 누대에 바람에 꽃이 떨어진다. 정신은 북과 함께 움직이고소리는 몸동작과 함께 표현한다. 방자한 웃음에서 해학이 물결처럼 나오고 입에서 말이 샘솟듯이 흘러나온다.” 청운은 송만재의 '관우시' 뒤에 서둘러 기록으로 남겨야 했던 사정을 밝혔다. "우리나라의 정악正樂은 모두 여항(閭巷, 시중)에서 전습된 것과 장악원梨院의 고악古樂과는 차이가 있다.최근에 창을 부르는 기생이 요모조모 뒤섞어서 두서가 없어지니 억지로 기억하기는 어렵다.” 청운이 언급한 정악들은 조선 시대 중기에 널리 불리던 12가곡으로, <백구사白鷗詞>, <죽지사竹枝詞>, <어부사漁父詞>, <행군악行軍樂>, <황계사黃鷄詞>, <처사가處士歌>, <춘면곡春眠曲>, <상사별곡相思別曲>, <권주가勸酒歌>, <양양가襄陽歌>, <매화타령梅花打令>, <수양산가首陽山歌> 등이다. 고려시대 시조작가 이현보李賢輔의 <어부사漁夫詞>만 빼고는 모두 작자가 미상이다. 12가곡은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가사歌辭보단 길이가 짧지만 풍류적인 서정을 담고 있다. 바뀌고 사라지는 추세여서 회자되는 노래들을 기록해 소개하며 당부했다. "널리 한 번쯤 전해주시라.” 광한루 위로 아른거리는 봄빛, 오작교가의 긴 그넷줄. 염문설(艶說)을 뿌리는 이는 지금 이 어사(李御使)라 아름다운 인연으로 옥중에서 향기를 쌓네. (서춘향(徐春香)과 이몽룡(李夢龍) 누가 알았으랴, 심청이 천상(天上) 선녀의 몸으로 잘못을 저질러 맹인 집안에 떨어질 줄을 해신(海神)의 아내가 되려고 공양미 300석과 몸을 바꾸었는데 궁궐 잔치에서 맹인들의 눈을 뜨게 했구나. (심청(沈淸) 낭자) 화(禍)는 악행으로 인해서 쌓이고 복(福)은 인덕(仁德)으로 말미암는다. 부귀는 쓰디쓴 가난에서 나온다. (연흥보(延興甫)) 가소로운 인간이여, 어리석고 한심한 자여, 이제 제비가를 부르며 서로 친하게 지내려무나. (연자가(燕子歌)) 도시락과 표주박, 대지팡이와 짚신으로 천리강산에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네. (유산가(游山歌)) 세상엔 갖가지 즐거운 일이 많으니, 사람들이 이별가를 부르게 하지 마라. (이별가(離別歌)) 시중에 떠돌아 다니던 작자 미상의 노래 아홉 곡을 채록해 한자로 옮겨 적으며 청운이 밝힌 후기에는 노래에 반영된 인간의 어리석음을 적시하고 있다. "하루는 친구의 책상에서 고시古詩를 보고 빌려서 소맷자락 속에 넣고 와서구가九歌만 베끼고 돌려주었다. 그리고 향을 피우고 등불을 켜고 저녁에그 맛을 세밀하게 완미하였다. 아! 인생은 꿈이니 좋은 꿈도 있고 나쁜 꿈도 있다. 하지만 깨어나면 조만간에 또다시 즐거움을 좋아하여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잊어버리는데, 사람의 마음이 본래 그러한 것이다.어떤 사람은 악몽을 만나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왜 그러한가.대체로 어진 사람은 꿈을 꾸지 않으니, 꿈조차 사람의 선악을 따르는 것인가.항심恒心이 있는 사람은 망상妄想을 하지 않고항심이 없는 사람은대부분 이치에 어긋나게 행동한다.잠꼬대 역시 정상적인 꿈과 배치되는 것이다.깨어나는 것에도 도가 있으니,배우지 않으면 깨어나기 어렵다. 하물며 꿈은 흔적이 없으므로 먼저 마음에서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푸른 하늘에 항상 뜬구름이 있어서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과 같으니, 그 구름을 쓸어내고 하늘을 본다면 어찌 상쾌하지 않겠는가. 구름이 항상 무심하게 굴에서 나와서 하늘을 가리는 것은 이 시끄러운 세상의 업장業障과 같아서,올 때에는 빠르게 오지만 갈 때는 아주 더디게 간다. 그러므로 한 구절을 베낀 것이다.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상심하면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어찌 크게 탄식하지 않으리오.아, 부질없는 인생이 꿈인 줄 알지만 깨어나기도 어렵고 또 이해하기도 어렵다. 청운은 게송 '성미가醒迷歌'를 좋아했다. 이런 노랫말을 담고 있다. 그의 삶의 내용을 축약한 것이라 할 만하다. 미혹을 벗어난 사람은 담백함을 즐기니 초가집에 살며 베옷을 입어도 마음이 편하다 영예를 구하지 않으니 치욕이 가까이 오지 않고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분수대로 살면서 시속을 따르네 사물은 언제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면 만사에 만족하고 수행을 하면 자신의 복록을 만들게 되네 참고문헌: 김영욱,"청운 강진희의 생애와 서화 연구, 미술사 연구," 2017 강진희, '악부합영',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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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문경의 King Road 4] 문경을 방문한 역대 대통령이만유 (향토사 연구원) 절대왕정 또는 절대군주제 하의 왕이 다스리는 시대는 아니지만 지금도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권한과 책무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지만, 그에 못지않게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시작으로 하여 광복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했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국민이 주인인 시대에 살고 있다. 왕은 아니지만 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 통치자로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이 문경을 방문했던 발자취를 더듬어보며 단편적이나마 문경과 함께한 근현대 역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 초대, 제2대, 제3대 이승만 대통령의 문경 방문은 1957년 9월 26일 문경시멘트(쌍용양회 문경공장) 공장 준공식 때였다. 국내 최초의 문경시멘트 공장 건립은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 재정 지원을 통해 1955년 11월 30일 기공하여 1957년 9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했다. 당시 해외 원조가 대부분 소비재 중심이었던데 반해 문경시멘트 공장 건립은 생산재 시설에 대한 투자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녔다. 연간 20만 톤의 시멘트를 생산하는 곳으로 당시 충주비료 공장과 함께 수학여행 및 산업시설 견학지로 유명했었다. 대한민국 산업화에 크게 기여한 쌍용양회 문경공장은 61년 만인 2018년 4월 30일 조업을 중단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나 경상북도와 문경시가 산업 역사와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물을 "산업 유산”으로 지정하고 공장을 포함 주변 20만㎡ 용지에 사업비 2,697억 원을 투입해 수소연료전지발전소, 익스트림 스포츠 테마파크, 영화 창작 스튜디오, 국립산업역사박물관, 청년 창업가와 예술가들을 위한 문화 창작 스튜디오 설치 등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 윤보선 대통령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은 1962년 3월 퇴임 후 그해 봄에 문경새재를 다녀갔다. 문경새재는 조선 세 번째 임금인 태종 14년(1414년)에 개척된 옛길로 사적 147호로 지정된 곳이며 군사 및 교통의 요충지인 문경새재에 산행을 오셨다가 새재산장(새재할매집)의 돼지고기 양념구이를 드셨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문경새재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3. 박정희 대통령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및 제5·6·7·8·9대 대통령으로 18년 5개월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 시절부터 문경에 총 10여 차례 방문하였다고 한다. 1976년과 1978년 11월 24일에 청운각, 문경초등학교, 문경새재를 방문하였으며 이때 문경새재 옛길을 포장하지 말고 그대로 보존하라는 지시를 하여 지금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맨발로 걸을 수 있는 명품 길 문경새재(명승 32호)가 자연 그대로 보존될 수 있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1937년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초임지로 1937.4∼1940.3월까지 3년간 문경보통학교(문경서부심상소학교/현 문경초등학교)에서 훈도(訓導=교사)로 재직한 관계로 문경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그때 박 전 대통령이 거처했던 하숙집으로 청운각(1978년 10월 경상북도 보존 초가옥 1호로 지정)이 보존되어 있고, 여기에 관련 자료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영부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이곳에서 매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제가 열린다. 4. 최규하 대통령 제10대 최규하 대통령은 1980년 7월 29일 가은읍 수해 현장을 시찰하고 문경새재를 방문하였다. 이때 건의가 있어 1관문 주흘관까지 도로포장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5. 전두환 대통령 제11·12대 전두환 대통령은 1983년 4월 문경군청, 대성새마을유아원과 수평초등학교를 방문하고 예비군 훈련을 참관하였다. 6. 노무현 대통령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2월 15일 문경휴게소 광장에서 열린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상주 구간 개통식에 참석하였고, 퇴임 후인 2008년 6월 23일 권양숙 여사와 함께 관광차 문경새재와 오미자체험관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7. 박근혜 대통령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06년 12월 27일 문경을 방문하여 마성면사무소에서 지역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문경 거점산지유통 사업설명회”에 참석하여 300여 농민들의 박수 속에 입장하여 사업추진 상황을 듣고,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문경초교 교사시설 하숙집이었던 청운각에 도착해 옛 제자들과 주민들의 영접을 받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2007년 8월 14일 오후 6시 30분 중부내륙고속도로 하행선 문경휴게소에 잠시 들려, 문경을 비롯해 영주, 봉화, 예천, 안동, 상주, 김천 등에서 활동 중인 자신의 캠프 관계자와 휴게소 이용객 등 200여 명으로부터 열열한 환영을 받고 구미로 떠났다. ☆ 청운각 박근혜 오동나무 이야기 10여 년 전 청운각 마당의 옛 우물에 오동나무 한 그루가 솟아오르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관계자에 의하면 2006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청운각을 방문한 뒤 이듬해 우물 속 벽에 작은 나무 하나가 자라기 시작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생육을 멈추고 있다가 2011년 7월(18대 대선을 17개월 앞둔 시점)에 갑자기 잎과 가지가 무성히 자라 높이 2m의 오동나무가 우물 위로 솟아올랐다는 것이다. 오동나무는 예부터 봉황이 둥지를 튼다는 나무로 전해져 왔는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길조로 여기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하늘나라에서 대권 도전에 나선 딸을 돕기 위해 신성한 오동나무를 보낸 것이라는 입소문이 돌았다. 이 소식이 퍼져나가자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이 오동나무를 구경하거나 기를 받기 위해 몰려왔다. 우연의 일치인지 하늘의 뜻인지 딸 박근혜는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위에 열거한 대통령 방문지를 토대로 기존 관광지와 연계하여 대통령이 남긴 일화를 모아 스토리텔링화하여 "길의 고장 문경, 대통령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 관광코스 : 문경새재⇨청운각⇨쌍용양회공장⇨동로 경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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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강구곡시(潁江九曲詩)서시(序詩) 대한삼경(大韓三慶) 문경에 상서로운 기운 일고 수정보 대조보에 물 가득 출렁인다. 기산영수(箕山潁水) 맑은 물이 옥토를 적시니 솔개가 높이 날고 물고기 뛰는구나. *대한삼경(大韓三慶) : 문경에는 "문경삼관(慶聞三關) 대한삼경(大韓三慶)”이란 말이 전해오는데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慶聞)에서 나라의 큰 경사 소식을 세 번 듣는다는 예언을 말한다. *기산영수(箕山潁水) : 중국 하남성에 있는 산과 시내로 "요(堯)임금과 소부(巢父),허유(許由)의 고사”가 있는 곳인데 조선에도 이에 버금가는 기산영수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문경(조령산과 조령천 또는 돈달산과 영강)에 있다고 한다. 아침 햇살 비치니 뭇 생명 춤추고 고 선생 애민사상 소나무보다 더 푸르네. 도도히 흐르는 영강수 유장(悠長)한데 산고수장(山高水長) 원두 향해 노 저어 나아가세 *고 선생 : 계정(溪亭) 고흥운(高興雲-1523∼1582),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형조정랑(刑曹正郞)과 고성군수를 지냈으며 여름 땡볕에 일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영신숲에 소나무를 심어 그늘에 쉬게 하였다. 제2곡 송정소(松亭沼) 송정 노송 물에 어려 한 폭의 그림 같고 영빈서당(潁濱書堂) 글 읽는 소리 바람결에 들려온다. 소나무에 걸린 달 보며 세사를 잊었더니 흐린 물 휘돌아 흘러 강물이 맑아지네. *영빈서당(潁濱書堂): 산양면 반곡리에 있는 서당으로 부훤당(負暄堂) 김해(金楷)가 지은 이설기(移設記)와 청대 권상일이 찬한 글과 산양 지역의 향촌 자치규약인 "향약소절목”이 전한다. 제3곡 수정보(水晶洑) 민초들 마음 새긴 고공(高公) 마애비 빛나고 영신들 사천 두락에 풍년가 소리 더 높네. 쌀은 백성의 하늘이라 웃음꽃 피어나고 봇도랑 물소리 졸졸 안 먹어도 배부르네. *고공(高公) :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1553∼1623), 조선 중기의 학자로 여러 벼슬을 거쳐 풍기군수(豊基郡守)를 지냈다. 저서로는 효빈잡기(效顰雜記), 태촌집(泰村集), 농가월령(農家月令) 등이 있고 영강에 수정보를 축조하였다. 제4곡 뱃나들(舟津) 회화나무 아래 정공(鄭公) 기린 죽림정(竹林亭) 있고 강물 위에 철새들 한가로이 노니는데 영남의 물산 실은 배 들고나던 나루터에 노을 속 작은 고깃배 외롭게 떠 있네 * 정공(鄭公) : 죽림재(竹林齋) 정방시(鄭邦時-1607∼1684), 평생을 고절한 은사(隱士)의 삶을 사셨고 당시 사림에서 명망이 높았다. 제5곡 별암(鱉岩) 갈마봉 아래 푸른 물속 자라 바위 숨어 있고 목마른 말이 내려와 목 축이는 명당터에 세계군인 모두 모여 평화 깃발 펄럭인 곳 만세지(萬歲池) 별암들에 고부이가(鼓缶而歌) 들리네. *고부이가(鼓缶而歌) : 북치고 질장구 치는 아름다운 대동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주역에서 험난함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혁신의 의미가 담겨있다. 제6곡 견탄(犬灘) 청운의 꿈 안고 먼 길 재촉하는 나그네 저녁노을 붉게 물든 여울 황금물결 이는데 물소리 정겨운 징검다리 건너며 바라보니 오정산(烏井山) 기슭 멀리 저녁연기 피어나네 제7곡 삼태극(三太極) 흰옷 입은 도인(道人)이 살았다는 물태극 길태극 산태극의 신비한 땅 어룡산(魚龍山) 고부산성(姑夫山城) 성돌에 낀 이끼 창연한데 휘돌아 흐르는 물에 천리(天理)가 유행(流行)하네. *天理流行 : 하늘의 이치가 널리 퍼져 행해진다. 제8곡 병풍바위(屛巖) 층암절벽(層巖絕壁) 높다란 병풍을 둘렀네. 천길 벼루 위에 아슬아슬 토끼비리 왜군(倭軍)이 춤추고 마의태자 망국의 한스린 길 천년도 한순간 꿈이었구나. *벼루 :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벼랑. 제9곡 용연(龍淵) 가은천 소야천 만나 영강을 이루고 경북팔경 제일경 신비로운 진남교반(鎭南橋畔) 때를 만난 잠룡(潛龍)이 승천한 여기가 송림 우거진 예가 진정 동천(洞天)이로다. * 동천(洞天) : 신선이 산다는 별천지. 영강구곡(潁江九曲)은 구곡문화가 조선시대의 유물로만 남아있지 않고 선비정신 등 유교문화를 계승 및 발전시키기 위해 2013년 1월 창립된 문경구곡원림보존회에서 전국 최초로 21세기 '신 구곡원림'을 설정, 경영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2년 여에 걸쳐 현장과 문헌을 찾으면서 노력한 결과에서 2016년 12월 12일 우리 지역 생명의 젖줄인 영강 중 영신숲에서부터 마성면 소재 진남교반에 위치한 용연(龍淵)까지 총 17.2km 구간에 '영강구곡원림'을 설정하고 경영해 오고 있다. 구곡원림은 구곡의 시원이 되는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주자)가 무이구곡(武夷九曲)을 경영한 것과 같이 조선시대 선비들이 구곡에서 성리학을 구현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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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X회복"…'경기공연예술페스타' 광주문화재단에서 개최경기도 대표 공연예술 페스티벌 '제8회 경기공연페스타(G-PAFe 2021)'가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광주시문화재단 남한산성아트홀에서 열린다.경기문화재단과 광주시문화재단은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됐던 공연예술 시장의 회복을 모색하기 위해 '공연예술X회복'이라는 주제로 '경기공연예술페스타'를 공동 주최한다고 20일 밝혔다.▲베스트콜렉션 공연 ▲창작쇼케이스 ▲아트마켓 ▲심포지엄 ▲패밀리데이 체험부스 ▲아트경기 2021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창작자에게는 무대로 돌아갈 기회를, 시민들에게는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한다. ◆2021 최고의 작품 4편 '베스트 컬렉션'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는 '베스트콜렉션'이다. 도 상주단체와 제작 초연 작품 가운데 최고의 작품 4편을 엄선했다.올해는 '나와 할아버지', '판타지아1950', '아무것도 없는 왕국', '엄마를 찾아 떠나는 아리의 모험' 등 연극을 선보인다.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나와 할아버지'는 2013년 초연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작품이다. 주인공 '준희'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수필처럼 솔직·담백하게 풀어낸다. 이 작품은 미니멀한 무대와 리얼리티 가득한 대사로 생동감과 감동을 선사한다.국악기반 크로스오버 그룹 '고래야'의 '판타지아1950'은 페르시아의 왕자, 인도의 향불 등 1950년대 유행했던 이국풍 고전가요를 '고래야' 특유의 색깔로 편곡해 선보이는 작품이다. 팬데믹 상황으로 활기를 잃어버린 일상에 여행의 설렘을 불러일으키며 판타지 세계를 펼칠 예정이다.'한국의 픽사'를 꿈꾸며 창단된 '브러쉬시어터'의 '아무것도 없는 왕국'은 관객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머시브씨어터' 형식의 어린이 체험 연극이다. 주인공 '빨간머리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거대한 판타지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퓨전국악 창작극 '엄마를 찾아 떠나는 아리의 모험'은 '사단법인 아리수'의 작품이다. 굶주린 엄마를 위해 음식을 구하러 떠난 작은 병아리가 숲속 동물, 회오리바람, 무서운 정복자 등을 만나며 일어나는 모험극이다. 동화적 스토리에 현대적으로 해석한 전통민요, 마술 등 장치를 더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간다. ◆참신하고 실험적인 신작 탄생…창작쇼케이스창작쇼케이스는 경기문화재단 '2021 지금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된 단체의 창작신작을 발표하는 무대다. 도내 공연예술전문단체의 창작 저변 확대와 실질적인 제작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기획됐다.연극, 음악, 무용, 전통 분야 12개 작품이 다양한 형식의 쇼케이스 공연을 선보여 참신하고 실험적인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올해 창작쇼케이스는 28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하루 3개씩 남한산성아트홀 소극장 무대에서 펼쳐진다.▲28일 프로젝트 타브 '오늘도 잘 곳 없음'(연극), 진주 '동백당, 빵집의 사람들'(연극), 김PD '별찌 이야기'(연극) ▲29일 신현아 '메아리'(무용), 세컨드윈드 스테이지 '그 사라짐에 대하여'(무용), 양선용프로젝트 '어루만지는 시간'(음악) ▲30일 연희공방 음마갱깽 '노래숲을 지켜줘'(전통), 창작집단 숨비 '끈'(연극), 극단 배다 '로맨틱 러시아'(연극) ▲12월1일 정소희 'Have to'(무용), 보에바이 '예술활동, 예술노동'(연극), 장병욱 '아홉수(No.9)'(연극) 등 실험적인 작품이 이어질 예정이다. ◆아트마켓, 심포지엄, 아트경기&패밀리데이그 밖에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네트워크 '공연중매프로젝트-아트마켓' ▲경기도 문화정책의 변화와 공연예술의 미래 '심포지엄' ▲문화예술 체험부스 '패밀리데이' 등도 열린다.'아트마켓'은 도내 전문예술단체, 전국 문예회관 공연 담당자 등이 참여하는 소통과 만남의 장이다.문예회관, 상주단체, 전문예술단체 실무자간의 비즈니스 미팅이 다음 달 2일 오후 2시부터 비대면 온라인(ZOOM)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는 모두 20개 공연단체가 참여한다.심포지엄에서는 경기도 문화 정책의 변화, 공연장 네트워크 활성화를 통한 공연 마케팅과 인프라 구축 전략, 경기도 상주단체 지원을 통한 공연 제작 활성화 방안 등 3가지 발제를 통해 문화 환경 속 공연 예술의 미래를 모색한다.소홍삼 의정부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이 좌장을 맡고, 유상진 경기도 문화종무과 전문관, 김현주 청운대학교 교수, 박병성 월간 공연전산망 편집장 등이 발제자로 나선다. 또 극단 마방진 고강민 대표, HJ컬처 한승원 대표 등이 실제 공연제작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줄 예정이다.'아트경기 2021 & 패밀리데이'는 올해 페스타의 특별한 볼거리다. 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경기 미술품 활성화 사업 '아트경기' 전시가 페스타 기간 남한산성아트홀에서 열린다.마지막 날인 다음 달 4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체험부스 '패밀리데이'가 페스타의 대미를 장식한다.조영석 광주시문화재단 미래비전팀장은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선보여 코로나19로 침체된 공연계가 회복하도록 기획한 행사다. 관객을 불러들이는 행사로 만들어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한편, 베스트콜렉션 공연은 인터파크 티켓에서 예매 가능하며, 창작쇼케이스는 시민 누구나 사전 신청을 통해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자세한 페스티벌 정보는 광주시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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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14한국 트로트의 아버지 전수린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엔카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다카기 이치로는, 제이피(JP)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엔카의 원점이 되는 천재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는 일본 후쿠오카 출신이지만 유년 시절에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일본에 건너가 탄생시킨 엔카의 멜로디는 한국의 것이고, 엔카의 원조는 한국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1932년 일본의 음악평론가 ‘모리(森一也)’는, 당시 ‘고가 마사오’가 조선에 살고 있었을 때 들었던 ‘전수린’의 멜로디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수린은 어떤 작곡가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수린(全壽麟, 1907~1984))의 본명은 전수남(全壽南)이다. 악극단 취성좌(聚星座)의 바이올린 주자로서 개성의 백천 지방으로 순회공연을 갔다가 비에 갇혀 있던 쓸쓸한 여인숙에서 애수 어린 <황성의 적(황성옛터)>를 작곡해 일약 민족가요의 작곡가가 된 전수린은 인삼으로 유명한 개성이 그의 고향이다. 어릴 때부터 습작으로 동요를 작곡하기도 한 전수린은 명문인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송도고보-1952년 인천으로 이전) 재학 중 장봉손(張奉孫)에게서 바이올린의 기초를 배웠고, 호수돈 여학교의 교장인 니콜스(Nicols) 여사(루추 부인이라는 설도 있음)에게서 정식으로 바이올린과 음악이론을 사사하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송도고보를 졸업(15세 때 중퇴라는 설도 있음)한 후에는 완고한 부모님을 설득해서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시작한다. 1925년에 청운의 뜻을 품고 상경한 전수린은, 열아홉 살 때 <봉선화> <성불사의 밤> 등을 작곡한 한국 음악의 선구자인 홍난파 선생이 주도하는 연악회(硏樂會)에 들어가 음악을 익히면서 동요 작곡가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해부터는 이미 가수들을 위한 편곡을 하기 시작하는데, <부활> <카츄샤> 같은 외국 가요를 편곡해서 불렀을 뿐만 아니라, 이때까지 우리나라 고유의 대중가요가 없던 시절에 당시의 순회극단인 동방예술단(東方藝術團)과 취성좌에 악사로 있으면서 독자적인 작곡을 하기 시작한다. 단발머리 소녀 박단마를 하루아침에 인기가수로 만든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는 1937년에 작곡하여 1938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악극단 취성좌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면서 작곡구상을 하던 전수린이 최초로 작곡한 처녀작은 이애리수가 노래한 <이국하늘>이며, 1926년경에 작곡해서 막간극의 노래로 불리다가 1932년에 일본에서 발표한 <고요한 장안>이 두 번째, 그리고 그 유명한 <황성옛터>가 세 번째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에서 <황성옛터>는 공연히 시비를 당했고, 작사, 작곡이 모두 불온하다고 해서 한국 최초의 금지 가요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황성옛터>는 한국의 세레나데라고 해서 일본사람들도 곧잘 부르던 노래였다. 악극단 취성좌의 인기가수 이애리수가 이 노래를 부르면 수많은 관중들은 저도 모르게 따라 불렀으며, 삼천리 방방곡곡 우리 겨레가 있는 곳에서는 으레 애수 어린 <황성옛터>의 가락이 흘러나왔다. <황성옛터>의 작곡으로 일약 민족가요의 작곡가가 된 전수린은, 이애리수를 인기가수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풋내기 열일곱 살의 소녀 가수 박단마를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의 단 한 곡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했으며, 또한 16세의 소녀 가수 황금심에게 <알뜰한 당신>을 부르게 해서 단 한 곡의 데뷔곡으로 황금의 신인을 만들기도 하였다. <알뜰한 당신>을 황금심이 부르면서 히트하게 되고, 레코드가 나오자 삽시간에 화제를 모으며 빅터레코드사를 돈방석 위에 올려놓기도 하였으며, 당시의 인기가수였던 김복희와 박단마를 능가하였다. 박단마, 이애리수, 황금심에게 데뷔곡을 주어 동시에 히트를 시키고 불멸의 스타가 되게 하자, 작곡가 전수린의 주변에는 신인 가수들은 물론 기성 가수들까지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전수린의 곡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할 정도였다. 남달리 정서적으로 풍부했던 작곡가 전수린은 자신의 이미지를 소중히 여기는 음악인이었다. <황성옛터>가 방초 우거진 개성 만월대를 모델로 했듯이 그의 정감에는 항상 뚜렷한 대상을 두었다. 그 한 예를 들면, 손금옹이 부른 <무정>이라는 노래는 이 노래를 부른 손금옹 자신의 시련을 소재로 전수린이 작사, 작곡했다. 손금옹 자신에게 시련의 고배를 마시게 했던 김모라는 청년은 분통을 못 이긴 나머지 악기점마다 돌아다니며 <무정>을 모조리 뒤져 싹쓸이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시련한 여자를 위로하는 내용으로 작곡한 <무정>은 황금심이 부르면서 히트를 했다. 전수린은 작사가 이부풍과 콤비가 되어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가요를 작곡했으며, 이 무렵 그의 특기는 신인가수의 데뷔곡을 히트시키는 히트 제조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한 전수린은 화려한 무대에 서서 인기를 독점해버린 가수들의 그늘에 서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일면도 있으나, 한때는 명지휘자로서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으며 지방공연 때는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여성 팬들 때문에 숨어다녀야만 하는 일도 있었다. 1942년에 다마가와(玉川)로 창씨개명(創氏改名)한 전수린은 ‘다마가와 위문대’를 조직하여 만주와 일본 북해도 탄광 지대까지 가서 한국 출신 노무자들을 위로하는 위문공연 활동을 하였다. 8‧15해방 이후에는 서울에서 악기점을 운영하였다. 1965년에는 라디오 연속방송극 주제가로 <강화도령> 등을 작곡하였고, 1970년에는 한국가요반세기동지회의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부인 이순희 여사와 함께 슬하에 7남매를 두고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전수린은 한국음악의 선구자인 홍난파와 함께 활동하면서 민족가요인 <황성옛터>를 위시해서 정답고 잊을 수 없는 대중명곡을 수 백곡 작곡하였다. 또한, 초창기 아무것도 없는 한국 가요계의 황량한 벌판을 개척하며 대중음악의 집을 지었고, 일본 등에 유학을 가지 않고도 일제강점기 불모지였던 한국 대중가요의 개척자로서 고가 마사오의 엔카 음악에 영향을 미친 천재 작곡가 전수린은 한국 ‘트로트의 아버지’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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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외국인, 경주 역사 탐방부터 김장 체험까지 즐긴다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해외문화홍보원(원장 박정렬, 이하 해문홍)은 국내 외국인 대학생 등과 함께하는 ‘주한 외국인 유네스코 문화유산 탐방 행사’를대면과 비대면 방식을 병행해 진행한다. 해문홍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대면으로 문화유산을 탐방할 수 있도록문화유산별 탐방 이야기 2~3가지를 다큐멘터리와 예능 형식으로 제작해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케이(K)-유네스코 어드벤처’ 시리즈 영상에서는외국인 참가자들이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 경주 역사유적지구, ▲ 불국사,▲ 안동 하회마을, ▲ 국채보상운동기록물, ▲ 유교책판, ▲ 택견, ▲ 김장 문화등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체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영상인 경주 역사유적지구 및 불국사 탐방 영상 ‘누가 누가더 신라를 잘 알고 있나’는 6월 2일(수)에 공개한다. 1995년에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불국사는 석조 기단과 목조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고대 한국 사찰 건축물로서 그 가치가 높다. 이번 영상을 통해 청운교와 백운교, 다보탑 등 불국사 곳곳의 의미 있는 문화재를 소개한다. 대릉원과 천마총, 첨성대, 성덕대왕신종 등을 소개하는 두 번째 영상과 세 번째 영상도 이어진다. 해문홍은 11월까지 문화유산별 영상 총 12편을 선보일 예정이다. 소규모 그룹 현장 탐방 및 유튜브 실시간 문화유산 강좌 실시 대면으로 진행하는 소그룹 탐방은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논산 돈암서원, ▲백제 역사유적지구, ▲남한산성 순으로 총 4회 진행하며, 각 탐방마다 공개모집한 외국인, 코리아넷 명예기자 등 총 10명 내외가 참여한다. 탐방 프로그램은 체험과 공연 관람 등으로 구성하여 외국인이 우리 문화유산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대면 탐방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며,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안전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해문홍은 방역 지침을 철저하게 준수한 가운데 소그룹으로 현장을 직접 탐방하는 대면 행사도 안전하게 진행할 계획이다. 소그룹 탐방은▲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 논산 돈암서원, ▲ 백제 역사유적지구, ▲ 남한산성 순으로총 4회 진행한다.탐방지별로 공모를 통해 외국인,코리아넷 명예기자 등10명 내외로참가자를 선정하며, 탐방 프로그램은 한국문화 체험, 공연관람 등, 우리 문화유산에 좀 더 쉽게다가갈 수 있도록 내용으로 구성한다.다만, 대면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올해는 온라인으로 6월과 11월에 한복과 김장 문화를 주제로각 1회씩 ‘실시간 문화유산 강좌(클래스)’도 운영한다. 6월 강좌에서는세계문화유산인 영주 소수서원에서 촬영한 한복 소개 영상을 보여주며외국인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이번 강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함께 조선 시대 당시 전통 혼례복부터 현대 한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든 영상과 온라인 강좌는 해문홍 다중채널연계망(MCN)*과 ‘유네스코 문화유산 탐방’ 공식 누리집**에서 순차적으로 볼 수 있다. * 다중채널연계망(MCN): youtube.com/GatewayToKorea ** 공식 누리집: http://heritageinkorea.kr 해문홍 정책 담당자는 "코로나19로 우리나라 여행이 어려운 외국인들이 우리문화유산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세계유산으로서의 한국문화의가치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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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윤석 - ‘도인’ 명성 얻은 광대 인생 40년사람이 한평생을 산다는 것. 부모를 잘 만나 제대로 배우고 좋은 직업을 골라 남한테 존경받으며 살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윤윤석(尹允錫ㆍ55, 1939년 4월 14일생) 씨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맺혀 있다. 열 두 살 적부터 시작한 ‘광대 인생’이 하고 싶어서도 아니었고 좋아서도 아니었다. 때로는 자기 흥에 겨워 가진 자와 구경꾼들 앞에서 아쟁을 켜고 뜯으며 소리(창)도 질러 댔지만 생각해 보면 속이 뒤집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럭저럭 국악과 함께 해 온 세월을 돌이켜 보니 40여 년이다.아쟁은 우리의 민속 악기 중에서도 일반에게는 매우 생소한 현악기이다. 거문고와 가야금의 ‘대중성’만을 취택해 놓았음직한 아쟁은 고려 때 유입된 당악기 중의 한 종류이다. 가야금을 개조해 8현으로 농현하지만 모양은 거문고와 같이 운두가 얕고 상자식으로 짜서 만든다. 별도로 머리 편을 괴는 발(足), 운족(雲足), 담괘, 담괘 뒤판의 모양, 줄 매는 법 등은 거문고와 전혀 달라 구분된다. 개나리 채를 말총으로 맨 활에 송진 가루를 문질러 연주하는 조현 기법이 매우 독특하다.그런데 이 아쟁 소리가 사람을 잡는다. 경기민요에 피리 빠지면 헛것이듯 이 저 구성진 남도 가락에 아쟁 빠지면 ‘들으나 마나’라고 한다."거문고가 ‘선비 악기’고 가야금이 ‘규방 악기’라면 아쟁은 시정 민초들의 짓눌림을 토해 내는 ‘아낙네의 소리’입니다. 그래서 아쟁의 농현으로는 유일하게 연주자의 감정을 담아 낼 수가 있지요.”선뜻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기탄 없이 털어놓는 윤씨도 아쟁 연주 얘기를 하면서는 목에 힘이 들어간다. 애절한 감정 농도가 짙게 밴 비탄조의 선율은 평소 국악에 관해 무심했던 사람들조차 "바로 이 소리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조선 사람’치고 여남은 가지 한도 없는 사람이 있간디요. 젊은 사람들한테도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적 한이 골수로 전해 올 테니까요. 그런데다 민초들의 쓰린 앙금이 가라앉은 이 소리를 들으면 울적했던 심회가 왈칵 뒤집혀 버리고 맙니다.”그러면서 윤씨는 아무리 악기가 명기라 할지라도 주자의 마음 이상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의 초상집에 가 제 설움에 겨워 울듯 연주자가 살아 온 인생의 우여곡절 깊이가 아쟁 소리를 구슬프게도 내고 행복한 성음으로도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국악계에선 윤씨를 ‘아쟁 도인’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그는 인간문화재도 아니고 생계를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연구소도 하나 없다. ‘따라지 인생길’이라고 스스로 자괴하면서도 개나리 활대만 잡으면 만사가 태평이다.서울 종로구 누상동의 두 칸짜리 전세방에서 들려주는 ‘윤씨의 인생’은 우리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예인 거의가 그러하듯이 참으로 참담하고 기구했다.전북 익산군 여산면 태생인 윤씨는 아버지(영택)가 가야금 명인이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 이름을 한자로 모른다고 했다. 가야금통 메고 삼남이 내 집이라며 동가식 서가숙하던 아버지 때문에 풀뿌리로 연명하고 메뚜기를 볶아 주린 배를 채우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할말은 아니지만 기왕 조실부모할 바에는 아버지부터 돌아가셔야 합니다. 풋보리를 절구로 찧어 멀건 죽을 쑤어 주시던 어머니가 굶주림 끝에 죽고 나니 3남매(1남2녀)는 결딴이 나고 말았습니다······. 남한테 덕 안 되는 소리는 해서 뭘합니까.”부모가 팔자라던가. 이리시 갈산동으로 이사 와 살게 된 윤씨는 ‘나팔이라도 불어 먹고살자’며 국악원을 찾아갔다. 그 때 나이 열 두 살. 이리 국악원에서는 ‘아버지 얼굴’을 보아 찡그림 없이 거둬 주었다. 윤씨가 일생을 통해 부모 덕본 것은 ‘이것뿐’이라고 한다.피내림, 그것은 무서운 것이었다. 윤씨는 가야금은 말할 것 없고 새납(호적), 설장구, 꽹과리, 장단북 등 잡기만 하면 척척이었다. 싹수있게 본 국악원의 이창선(李昌善, 명창) 씨가 싸잡고 단가와 흥부가를 가르쳐 목을 틔게 해주었다.7~8년간을 온갖 궂은일 도맡으며 장단이라면 비껴 나가는 엇박까지 낚아채게 됐다. 아홉수가 원수런가. 19세에 다시 아버지 시신을 확인하고는 유랑길에 나섰다는 그는 "부전자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나 보다.”며 모처럼 웃었다. 역마살 낀 기왕의 광대 인생 임춘앵 극단, 박후성(朴厚性)의 화랑극단, 진경단체 등을 전전하며 악사로 장단을 맞춰 왔다. 이 때 이골이 나버린 진양(느린 장단)에서 휘모리(아주 빠른 장단)의 박자 감각은 아직까지도 탁월하다.이 기간 중 임춘앵 극단에서 만난 한일섭(韓一燮, 1972년 작고) 씨와의 인연으로 윤씨는 평생을 아쟁과 함께 살게 된다. 일제 유랑 극단 시절부터 아쟁의 명주자였던 한씨는 새납 연주에도 일가를 이뤄 생존 당시부터 ‘전설적 광대’로 불렸던 주인공이다. 그 한일섭 씨한테 아쟁 주법을 물려받은 윤윤석 씨다."종로 권농동에 살던 한선생님을 찾아가 밤늦도록 아쟁을 배운 때가 있었습니다. 짐짓 바깥 공기가 이상해 창문을 열면 동네 사람들과 길 가던 행인들이 골목을 그득 메운 채 선생님 연주를 듣곤 했지요. 남들도 신기에 가깝다고 늘 말해 왔습니다.”현재 우리 국악계의 아쟁 산조는 한일섭제와 정철호(鄭哲鎬)제로 대별되는데 감정 표현 기법과 장단에서 약간의 차이를 나타낸다. 한일섭제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박자가 구성되며 감정 표현법이 애절하기 비길 데 없다.스무 살에 한씨를 만나 아쟁 활대를 잡은 이후 윤씨는 35년 동안 오로지 아쟁을 안고 살아 온 것이다. 한때는 놀음청에 불림 받아 목돈도 만져 보았지만 술로 날려 버렸다. 자신이 훑어 내는 아쟁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는 게 무엇인가 싶었고, 구차한 인생 푸념을 달래 줄 건 오직 술뿐이라 생각했다며 뼈아픈 후회를 한다.윤씨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예술 외에는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상복도 지지리 없는데다가 가정마저 평탄치를 못했다. 돈복은 아예 벗어 아직도 이 모양 요 꼴로 산다고 했다. 자신의 ‘밥줄’인 아쟁도 일반화된 지가 오래지 않았다 하여 무형문화재 지정 대상에도 못 오르고 있다. 요즘같이 명리 밝은 세상, 인간문화재 지정 가망이 없는 국악기에 일생을 걸 젊은이들이 없다. 요즘 들어서는 막내아들(윤서경, 청운중 3년)한테 아쟁 활대를 잡히고 있다. 이런 각박한 인심 속에서도 윤씨는 오직 아쟁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조영제(調永濟, 33) 씨가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한다. 윤씨만이 해낼 수 있는 지범질 주법(활대를 사용 않고 엄지와 검지로 뜯는 연주법)은 보존이 시급한 새로운 창제다. 아주 빠른 휘모리에서 엇모리, 엇박으로 넘겨 채는 주법이 까다롭지만 조씨는 무난히 소화해 내고 있단다."직업이나 직장은 농사꾼의 전답과 같은 것 아닙니까. 열심히 가꾸고 일군 만큼 소출을 얻겠지요. 흔히 내 처지가 불우하고 시원찮으면 남을 원망하지만 저는 마음 편히 삽니다. 내 대에 인간문화재가 안 되면 다음에라도 되겠지요. 다만 예술의 맥을 끊지 않고 이어가는 게 중요하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이규원, 정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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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임방울국악제 명창 · 일반부 수상자명단무제 문서 제21회 임방울국악제 명창 · 일반부 수상자 명단 □ 판소리 명창부 : 4명 시 상 내 역 성 명 지 역 참 가 작 임방울대상(대통령상/2,000만원 부상:임방울상(순금40돈) 원진주 경기 춘향가 중 십장가 최우수상(방일영상/1,200만원) 김경아 인천 춘향가 중 옥중가 우수상(SBS 사장상/300만원) 전지혜 전남 춘향가 중 이별가 준우수상(진흥회이사장상/200만원) 서정민 경기 춘향가 중 십장가 □ 판소리 일반부 : 4명 시 상 내 역 성 명 지 역 참 가 작 최우수상(문화부장관상/200만원) 송나영 서울 수궁가 중 초압 우수상 (수림문화상/150만원) 황라윤 전남 춘향가 중 십장가 준우수상 (진흥회이사장상/100만원) 김율희 서울 심청가 중 박씨부인 유언 장려상 (진흥회이사장상/50만원) 김혜진 전북 춘향가 중 이별가 □ 가야금병창 : 4명 시 상 내 역 성 명 지 역 참 가 작 최우수상 (문화부장관상/200만원) 서은미 서울 춘향가 중 사랑가 우수상 (시의회의장상/150만원) 지유정 서울 흥보가 중 감계룡~유색황금눈 준우수상 (KBC사장상/100만원) 이용우 서울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장려상 (진흥회이사장상/50만원) 박한솔 광주 단가 대장부 □ 농 악 : 4팀 시 상 내 역 성 명 지역 대 표 대 상 (국회의장상/700만원) 영남풍물연구소 풍물예술단 대구 한규복 최우수상 (시장상/500만원) 고창방장농악단 전북 이명훈 우수상 (진흥회이사장상/300만원) 한국농악보존협회광주시지회 광주 최상진 준우수상(진흥회이사장상/200만원) 성남오리뜰농악 경기 강승호 □ 시 조 : 5명 시 상 내 역 성 명 지역 참 가 작 최우수상 (광주광역시장상/200만원) 박은선 광주 완재사설시조, 우시조, 엮음질음시조 우수상 (시의회의장상/150만원) 서길수 경남 “ 준우수상 (KBC사장상/100만원) 김명남 전남 “ 장려상 (진흥회이사장상/50만원) 안병재 대구 “ 류고경 경북 “ □ 무 용 : 4명 시 상 내 역 성 명 지 역 참 가 작 최우수상(문화부장관상/200만원) 박지혜 서울 살풀이 우수상 (진흥회이사장상/150만원) 주현선 광주 태평무 준우수상(진흥회이사장상/100만원) 유해림 광주 태평무 장려상(진흥회이사장상/50만원) 박형주 광주 살풀이 □ 기 악 : 4명 시 상 내 역 성 명 지 역 참 가 작 최우수상(국무총리상/300만원) 오영미 광주 피리 우수상(한국국악협회이사장상 150만원) 신희재 서울 대금 준우수상(진흥회이사장상/100만원) 김희영 서울 거문고 장려상(진흥회이사장상/50만원) 김정민 광주 아쟁 제21회 임방울국악제 학생부 수상자 명단 □ 판소리 : 15명 부문별 시 상 내 역 성명 학 교 명 참가작 고등부 금상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100만원) 김수인 광주일고 3 심청가 중 배는고파 은상 (진흥회이사장/50만원) 서의철 국립전통예술고 2 적벽가 중 호로곡 동상 (진흥회이사장상/40만원) 홍지윤 고양백양고 3 춘향가 중 십장가 장려상(진흥회이사장상/각 30만원) 이정현 국립국악고 2 수궁가 중 용왕이 탄식하는 대목 정서희 경남예고 2 심청가 중 주과포혜 중등부 금상 (시교육감상/50만원) 최효주 경북경산여중 3 수궁가 중 고고천변 은상 (진흥회이사장상/40만원) 김가을 보성여중 3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 동상 (진흥회이사장상/30만원) 전민권 화순중 1 심청가 중 주과포혜 장려상(진흥회이사장상/각 20만원) 노희선 화순제일중 2 춘향가 중 이별가 최민강 전주예술중 2 홍보가 중 제비노정기 초등부 금상 (시교육감상/40만원) 양수아 목포하당초 4 춘향가 중 와상우에 은상 (진흥회이사장/30만원) 유송은 광주송우초 2 흥보가 중 두손합장 동상 (진흥회이사장상/20만원) 신윤주 정촌초 4 심청가 중 유언대목 장려상(진흥회이사장상/각 10만원) 강경민 해미초 4 심청가 중 집이라고 대목 이도경 화순제일초 3 춘향가 중 춘향추천하는 대목 □ 기악 : 16명 부문별 시 상 내 역 성명 학 교 명 참가작 고등부 (관악) 금상 (시교육감상/100만원) 박상진 충남예고 2 피리 은상 (진흥회이사장상/50만원) 최태훈 국립전통예고 3 피리 동상 (진흥회이사장상/40만원) 김동환 국립전통예고 2 대금 장려상(진흥회이사장상 /각30만원) 오혜림 국립국악고 2 피리 최수혁 국립국악고 1 피리 김보경 국립전통예고 3 해금 고등부 (현악) 금상 (시교육감상/100만원) 김보람 광주예고 3 가야금 은상 (진흥회이사장상/50만원) 장혜연 국립전통예고 2 거문고 동상 (진흥회이사장상/40만원) 이서준 부산예고 2 아쟁 장려상(진흥회이사장상/각30만원) 이승호 전남예고 2 가야금 이준화 광주예고 2 아쟁 중등부 금상 (시교육감상/50만원) 원유빈 국립국악학교 3 해금 은상 (진흥회이사장상/40만원) 강인수 감정중 3 대금 동상 (진흥회이사장상/30만원) 김여진 국립국악학교 3 거문고 장려상(진흥회이사장상/각 20만원) 임영범 목포예향중 2 가야금 이선영 대구소선여중 3 해금 □ 무 용 : 10명 부문별 시 상 내 역 성명 학 교 명 참가작 고등부 금상 (시교육감상/100만원) 류일훈 광주예고 3 승 무 은상 (진흥회이사장상/50만원) 최예지 동아여고 3 살풀이 동상 (진흥회이사장상/40만원) 문다영 광주여고 3 승 무 장려상(진흥회8사장상/각 30만원) 신솔찬 광주예고 3 살풀이 김민주 전주사대부고 3 승 무 중등부 금상 (시교육감상/50만원) 조인영 상일중 2 살풀이 은상 (진흥회이사장상/40만원) 강예린 경덕중 3 승 무 동상 (진흥회이사장상/30만원) 김주연 풍암중 2 장검무 장려상(진흥회이사장상/각 20만원) 김보경 청주 대성중 2 태평무 정선아 청주 청운중 1 살풀이 제21회 임방울국악제 전국대회 ‘임방울판소리장기자랑’수상자 명단 시상구분 성명(연령) 지역 시상금 6,000천원 37명 금 상 1 ( 50만원) 이해숙(57) 전남 은 상 2 (각40만원) 김인원(62) 광주 노영란(52) 서울 동 상 4 (각30만원) 최석철(44) 광주 양병덕(56) 광주 정명수(63) 광주 윤순임(54) 서울 인기상 5 (각20만원) 최영희(53) 전남 박동식(75) 전북 임동근(71) 광주 김공수(70) 광주 정동재(57) 서울 장려상 25 (각10만원) 김성임(56) 광주 백애숙(47) 광주 전은희(35) 전북 진병길(65) 전북 최판봉(75) 광주 정유화(60) 광주 이효성(48) 전남 박중신(36) 전북 이용묵(74) 광주 오길삼(71) 광주 김종대(49) 광주 안인숙(53) 광주 박삼철(67) 광주 양정연(45) 광주 양삼자(74) 전남 장정임(60) 전남 정현순(80) 광주 이상선(64) 광주 이금순(71) 전남 신휘승(68) 서울 정순자(70) 광주 김수예(62) 서울 한상조(76) 광주 김옥순(67) 광주 이춘근(71) 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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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전통예술기획자양성프로젝트 <입문과정> 참가자 모집 3월 20~24일2017 전통예술기획자양성프로젝트 참가자 모집 공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는 전통예술인 대상 공연기획능력 강화를 목적으로 2017 전통예술기획자양성프로젝트 참가자를 모집하오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모집대상  ㅇ 모집인원 : 50명 내외 ㅇ 모집대상 : 전통예술 전공자 혹은 동등한 이력자 (대학생 ~ 35세 미만)  ㅇ 우선선발 대상 - 전통예술 관련학과 졸업예정자(4학년) 및 졸업자(졸업 후 2년 이내) - 전통예술인턴 참여 및 수료자 (2014년~2016년) - 지방거주자 □ 교육개요 ㅇ 교육내용 : 뮤직 비즈니스, 공연제작, 홍보 총 3개 분야에 대한 교육,  특강 및 토론, 발표평가, 수료식 ※ 세부내역 붙임 참조 ㅇ 교육목표 : 기획, 비즈니스 능력을 겸비한 융합형 전통예술 인재육성 ㅇ 교육장소(안) : (재)정효국악문화재단 (서초구 서초동 소재) ㅇ 교육일정 : 2017. 4. 8(토) ~ 7. 1(토) / 14:00 ~ 18:00 (매주 토요일 / 총 12주간) □ 선발방법 ㅇ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평가위원 점수합산 및 고득점 순으로 선발 ㅇ 평가내용 : 서류평가 (참가신청서 및 자기소개서)  ㅇ 결과발표 : 2017. 3. 31(금) 예정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홈페이지 공고) ㅇ 평가지표 번호 평가지표 배점 (100점) 1 참여의지 및 동기 60 2 기획 관련 업무에 대한 이해 20 3 우선선발 기준에 따른 가산점 20 □ 접수안내 ㅇ 제출서류 - 참가신청서 및 자기소개서  (재단홈페이지 www.kotpa.org에서 양식 다운받아 작성) - 학부 이상 재학·휴학 및 졸업 증명서(해당자에 한함) - 경력증명서 (해당자에 한함) - 개인정보 제공 및 이용 동의서 1부 - 개인정보 목적 외 이용·제공 동의서 1부 ㅇ 접수기간 : 2017. 3. 20(월) ~ 3. 24(금) 18:00 까지  ㅇ 접수방법 : 이메일접수 (lsm0613@naver.com) - 접수처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미래전략사업팀 이도연 lsm0613@naver.com  ※ 이메일 송부 후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담당자(이도연)에게 접수여부 확인 전화 요망 ※ 접수기간 외 신청은 불가능하며, 접수된 서류는 반환되지 않음 ※ 제출서류 미비 및 접수 미확인 등으로 인한 책임은 응시자에게 있음 □ 기타사항  ㅇ 문의처 :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미래전략사업팀 이도연 (02-580-3274 / lsm0613@naver.com) □ 프로그램 및 강사 소개 ㅇ 프로그램 구분 주차 시간 구성 강사 OJT 1주차 4/8(토) 14:00~16:00 ㅇ개강식(입문과정 개요 및 진행안내) ㅇ오리엔테이션 (재)전통공연예술 진흥재단 미래전략사업팀 16:00~18:00 ㅇ전통예술의 현황과 미래전망 - 전통예술 비즈니스 모델 분석과 타 분야와의 차이점 뮤직 비즈 니스 2주차 4/15(토) 14:00~16:00 ㅇ전통예술 단체설립과 운영 - 단체의 설립과 ROLE, 비즈니스 방법 전무영 ㈜티앤씨컴퍼니, 티앤씨매니지먼트 대표 16:00~18:00 ㅇ아티스트 매니지먼트 - 다양한 전통예술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성공사례와 실패사례 3주차 4/22(토) 14:00~18:00 ㅇ단체소개 자료와 테크니컬 라이더 - 구성, 용어, 범위 및 차별화 전략 4주차 4/29(토) 14:00~16:00 ㅇ음반, 음원의 제작 - 음원/음반의 제작과정과 실무TIP 16:00~18:00 ㅇ뮤직퍼블리싱과 저작권 - 음악산업의 구조와 음원비즈니스 미정(특강) 공연 제작 5주차 5/13(토) 14:00~18:00 ㅇ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산업 -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미디어, 라이브의 명확한 구분과 이해 장현기 ㈜웨이즈비 대표 6주차 5/20(토) 14:00~18:00 ㅇ라이브 프로덕션 - 각 장르의 라이브 엔터테인먼크 컨텐츠 산업의 프로덕션 이해 7주차 5/27(토) 14:00~18:00 ㅇ프로듀서와 연출감독 - 기획을 총괄하는 프로듀서, Creative를 총괄하는 연출감독 각각의 업무와 협업 관계 파악 8주차 6/3(토) 14:00~18:00 ㅇ공연기획서와 프리젠테이션 - 설득의 Process 이해 홍보 9주차 6/10(토) 14:00~16:00 ㅇ예술가에게 필요한 홍보 마인드 - 홍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예술가가 갖추어야할 홍보 마인드 , 타 분야의 고객관리와 팬관리 사례 김은 아담스페이스 대표 16:00~18:00 ㅇ이미지 메이킹 - 프로필 사진, 포스터, 인터뷰 노하우 10주차 6/17(토) 14:00~18:00 ㅇ예술가를 위한 온라인 홍보법 - SNS/BLOG/PORTAL(온스테이지 등) 11주차 6/24(토) 14:00~18:00 ㅇ보도자료 작성과 배포 - 보도자료의 구조, 배포방법, 작성법 수료식 12주차 7/1(토) 14:00~18:00 ㅇ발표회/수료식 - 공연기획안 프리젠테이션 - 최종평가 및 수료식 외부 전문가 평가 ※ 일정 中 특강 1회 추가 예정 ㅇ 강사소개 구분 강사명 비고 뮤직 비즈니스 전무영 ㈜티앤씨컴퍼니, 티앤씨매니지먼트 대표 · ㈜티앤씨컴퍼니, 티앤씨매니지먼트 대표 · 소극장 판씨어터 극장장 역임 · 김덕수 사물놀이, 슬기둥, 푸리, 오케스타코바나, 김용우, 바이날로그 등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 국악실내약축제 총감독 및 연출 · 전주소리축제, 화성문화제 개막연 기획연출 · 슬기둥 7~8집, 정수년 뉴에이지해금, 김경아 피리 음반 제작 및 프로듀스 공연제작 장현기 ㈜웨이즈비 대표 · ㈜웨이즈비 대표이사 · 2011~2014 ㈜인터파크씨어터 공연사업본부장 · 2015~현 ㈜웨이즈비 대표이사 / 프로듀서 · 2011~2012 동아방송대학교, 청운대학교 출강 · 2014~2016 이화여대 창조아카데미 FRAME · 2015~2017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 블루스퀘어(삼성전자홀, 삼성카드홀), 메세나 폴리스 롯데카드 (아트센터, 아트스페이스),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 등 공연장 건립 및 운영 · 박효신 전국투어, JYP 박진영 전국투어, 성시경 전국투어, 이승환 전국 투어 외 다수 Live Concert 연출 홍보 김은 아담스페이스 대표 · 문화콘텐츠전문 홍보대행사 아담스페이스 대표 · 영화 패딩턴, 야간비행, 공정사회, 파괴자들 외 다수 · 뮤지컬 모던태권도 킥스, 월남스키부대, 내사랑 내곁에 왜 다수 · 축제 제 1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6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외 다수 · 전시 반 고흐 인사이드: 빛과 음악의 축제, 반 고흐: 10년의 기록展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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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학생 음악캠프 ‘FEEL HARMONY’무제 문서 2,0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만든 시각장애학생 음악캠프 ‘FEEL HARMONY’ - 음악적 재능 뛰어난 시각장애학생 12명 선발해 마스터클래스 및 문화체험 제공 - 시각장애인 최초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 김민주 양도 캠프 참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관장 김미경)은 8월 3일(월)부터 7일(금)까지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지닌 시각장애학생들을 위해 '시각장애학생 음악캠프(FEEL HARMONY)'를 개최한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본 캠프는 음악적 잠재 능력이 뛰어난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전문적인 교육 기회를 제공해 예술적 재능을 넓히고, 향후 전문 음악인으로서의 성장을 돕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시각장애학생 음악캠프는 취미활동 수준이 아닌 음대 진학 등 전문 음악인을 양성하기 위한 심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쳤다. 지난달 20일,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설리번학습지원센터에서는 클래식, 실용음악, 전통음악 분야에 뛰어난 시각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이 진행됐으며, 이를 통해 총 12명의 학생이 선발되었다. 선발된 학생들 중에는 시각장애인 최초로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 김민주 학생(첼로전공, 시각장애1급)과 스타킹에 출연해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은 유지민 학생(피아노전공, 시각장애1급), 그리고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초청공연을 펼친 양하은 학생(해금전공, 시각장애1급)이 포함되어 눈길을 끌었다. 시각장애학생들은 음악캠프를 통해 실력 있는 대학 교수진으로부터 일대일 개인지도를 받으며, 멘토스쿨, 공연관람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음악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넓힐 예정이다. 심도 있는 교육을 위해 강호중 교수(추계예대), 김성아 교수(한양대), 변종혁 교수(영남대), 함재령 교수(서울종합예대), 홍종진 교수(대진대)가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해 개인 레슨 및 앙상블 연습을 지도할 계획이다. 한편, 유명 재즈피아니스트인 김광민 교수가 멘토로 초청되어 시각장애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진행한다. 그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 대한 이야기와 음악인으로서의 시행착오, 그리고 극복과정 등을 직접 조언해주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특히, 김광민 교수 가족은 시각장애인의 복지 증진을 위해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 대지를 기증했을 만큼 시각장애인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김 교수와 시각장애학생들의 만남은 더욱 뜻 깊을 것으로 보인다. 캠프 마지막 날인 8월 7일(금)에는 학생들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필하모니 음악회’가 현대힐스테이트홀에서 열린다. 올해 '필하모니 음악회'는 2,000여 명의 시민들이 온라인 기부사이트인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후원한 기금으로 마련되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캠프에 참여하는 김민주 학생은 “나는 빛조차 구별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진심을 다한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첼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이번 캠프를 통해 실력 있는 교수님들을 만나 일대일로 레슨을 받을 수 있어 기쁘고, 음악에 대한 기초를 탄탄히 다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 매우 기대된다”고 밝혔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김미경 관장은 “음악적인 재능과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음악캠프를 마련했다. 음악대학 교수진들이 직접 멘토로 참여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음악적인 실력이 향상됨은 물론, 저명한 음악인들과의 만남으로 심리적으로도 큰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본 음악캠프가 시각장애학생들이 장애를 딛고 일어나 실력으로 인정받는 음악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올해 ‘시각장애학생 음악캠프’는 보건복지부, 네이버해피빈, 신한은행, 현대건설, 현대힐스테이트의 후원으로 이뤄지며, 수업은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설리번학습지원센터에서 진행된다. * 촬영요청 / 취재문의 : 홍보팀 배지혜 02-880-0867, 010-3613-3814 [음악캠프 일정 안내] 시간 8/3(월) 8/4(화) 8/5(수) 8/6(목) 8/7(금) 10:00~ 11:00 오리엔테이션 CultureClass 자유로운영혼 MajorClass 음악이론과 시창청음의 이해 CultureClass 리허설매너수업 MajorClass 마스터클래스 (전공교수) 11:00~ 12:00 12:00~ 13:00 점심 식사 13:00~ 14:00 MajorClass 필하모니앙상블 MajorClass 필하모니앙상블 MajorClass 필하모니앙상블 MajorClass 필하모니앙상블 14:00~ 15:00 15:00~ 16:00 CultureClass 멘토스쿨 (김광민교수) MajorClass 마스터클래스 (전공교수) MajorClass 마스터클래스 (전공교수) MajorClass 마스터클래스 (전공교수) 16:00~ 17:00 필하모니음악회 및 수료식 17:0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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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하계 연수회 안내 "승무, 교방살풀이 춤" 8. 17~ 26주최 : (사)한국전통춤연구회 임이조 춤 아카데미에서, 여름방학 연수회를 개최합니다. 한국전통무용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승무 일시 : 2006년 8월 17일 ~ 19일 오전 10시~오후 5시 준비물 ㅡ 장삼, 북가락 교방살풀이춤 일시 : 2006년 8월 24일~26일 오전 10시~오후5시 준비물ㅡ 살풀이수건 신청기간 : 2006년 7월 1일 ~ 8월 10일 문 의 : 02) 722~1477 016 640 395 오시는길 :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버스 1711번,7016번 (경기상고 앞)하차. 장 소 : 임이조춤아카데미 연습실 주 소 : 종로구 청운동39ㅡ1 강스빌빌딩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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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명창박록주전국국악대전 5월 27~28일이 대회요강은 2017년 5월 3일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참가신청서가 변경되었으며 그외의 수정된 사항은 붉은색으로 표기하였습니다. 2017년 제17회 명창박록주전국국악대전 : 2017년 5월 27일(토) ~ 28일(일) 8:00 : 구미시문화예술회관, 금오공과대학교 : 구미시 : (사)명창박록주기념사업회 :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경상북도교육청, 국립금오공과대학교, 국악신문사, 현대HCN새로넷방송 판소리,기악(관악,현악)무용 고등부,일반부(대학생 포함) *타대회 일반부 대통령상, 고등부 교육부장관상 수상자는 참가할수 없음. - 경연곡목 및 시간 구분 대회종목  참가부문 경연시간 대회장소 고등부 일반부 경연안내 판소리 판소리 다섯바탕 중 자유선택 *예선·본선곡은 중복할수 없음 예선 10분 본선 15분 예선 15분 본선 20분 구미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기악(관악) 대금,피리,해금 * 예선: 산조 중 진양과 자진모리 예선 5분 본선 10분 *본선 : 짧은산조 구미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기악(현악) 가야금,거문고,아쟁 금오공과대학 내 청운대 (구미시 대학로 61번지) 무용 한국전통무용, 반주 cd만 허용 * 창작,군무 제외, 예선·본선 동일곡 가능 예선5분 본선8분 예선8분 본선10분 금오공과대학교 본관 대강당 (구미시 대학로 61번지) - 경연일정 참 가 안 내 판소리 무용 예선 (27일) 추첨 고등부 일반 08:30 본선 (28일) 추첨 08:30 예선과 동일한 경연장 로비 경연 고등부 일반 09:30 경연 09:00 ~ 12:30 관악 현악 추첨 고등부 일반 08:30 추첨 08:30 예선과 동일한 경연장 로비 11:00 경연 고등부 일반 09:00~17:00 경연 09:00 ~ 12:30 · 각 대회는 고등부 경연후 일반부 경연함 · 참가자는 추첨 및 경연시간을 준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종합경연 5.28(일) 14:00 ~ 16:00 각 부문별 최우수자 구미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 시상식 16:20 구미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 심사위원 : ① 심사위원은 부문별5-7명을 위촉함 - 심사규정 : ① 경연직후 심사한 점수를 즉시 발표함(예선,본선) ② 심사기본점수에 미달할 경우 시상을 하지 않을 수 있음 ③ 심사 회피제도 실시 * ※일반부 총리상 장관상은 2회까지만 중복 수상되며 이후 참가 불가함.   - 접수기간: 2017년 4월 24일(월) ~ 5월 13일(토) 17시까지 (20일간) - 제출서류: 참가신청서(추첨시 : 학생증,신분증 필히 지참) (반명함판 사진 필히 부착) - 접수방법: 홈페이지접수, FAX접수, 우편접수 (사)명창 박록주기념사업회 구미시 박정희로 735-22(광평동) TEL: 054-457-8365, 458-8365 FAX: 054-456-9545 홈페이지: www.parkrokju.org *우편접수는 5월 13일(토) 17시까지 도착분에 한함 일반부: 5만원, 고등부: 없음 * 본 대회는 고수 및 장단을 무료로 제공함(무용 제외). -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대회장소 약도를 확인할 수 있음(누르면 해당 웹페이지로 이동함).   - 일반부 종합대상(1명) 대통령상 상금 1,000만원 종합최우수상(1명) 국무총리상 상금 300만원 종합우수상(1명)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상금 200만원 구분 최우수상(1명) 우수상(1명) 장려상(2명) 판소리 경상북도지사상 100만원 구미시의회의장상 50만원 명창박록주기념 사업회이사장상 각 30만원 기악(관악) 경상북도지사상 100만원 구미시의회의장상 50만원 명창박록주기념 사업회이사장상 각 30만원 기악(현악) 경상북도지사상 100만원 구미시의회의장상 50만원 명창박록주기념 사업회이사장상 각 30만원 무용 경상북도지사상 100만원 구미시의회의장상 50만원 명창박록주기념 사업회이사장상 각 30만원 * 종합대상,종합최우수상,종합우수상은 각 부문별 최우수상 4명중 경연을 통하여 선발하여 상장과 상금은 한종목만 지급함. - 고등부 종합대상(1명) 교육부장관상 상금100만원 구분 최우수상(1명) 우수상(1명) 장려상(2명) 판소리 경상북도교육감상 50만원 구미시장상 30만원 명창박록주기념 사업회이사장상 각 20만원 기악(관악) 경상북도교육감상 50만원 구미시장상 30만원 명창박록주기념 사업회이사장상 각 20만원 기악(현악) 경상북도교육감상 50만원 구미시장상 30만원 명창박록주기념 사업회이사장상 각 20만원 무용 경상북도교육감상 50만원 구미시장상 30만원 명창박록주기념 사업회이사장상 각 20만원 * 종합대상은 각 부문별 최우수상 4명중 경연을 통하여 선발하여 상장과 상금은 한종목만 지급함. * 본 대회요강 및 시상내역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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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3회 인천우리소리전국국악대제전 6월 25일무제 문서 /* reset */ body,ul,ol,li,dl,dt,dd,p,h1,h2,h3,h4,h5,h6,input { margin:0; padding:0; } ul,ol { list-style:none; } img { border:0; } body { font: 12px "나눔고딕"; } .red{color:#fe0000;} .blue{color:#2f00ff;} .bold{font-weight:bold;} 2016년 제3회 인천우리소리전국국악대제전 『2016. 제3회 인천 전국 국악대제전』은 전통문화의 우수한 인재를 발굴함과, 갈수록 소외되어가는 우리 전통국악을 실전에서 경험하고, 소외된 국악인들에 게 경연대회를 통한 자신감 성취 및 타 장르 교류를 통 한 학습기회를 마련하여 국악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키 우는 계기가 될 수 있게 하며, 전통문화를 계승발전 , 육성 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함에 있다. : 2016.06.25.(토) : 청운대학교 인천 캠퍼스내 1층 공연장 : (사)우리소리보존회 인천 광역시 지회 : (사)우리소리보존회 인천 광역시 지회 : 해양안전연합회,바르게살기운동본부, 김포국악학원, 박민주 무용학원, 포시즌여행사,코레일,한양테크,아이메이투어,루이까스텔순천점,동아치과,비젼디자인,인천가스설비 -민 요 : 판소리, 시조, 경기민요, 서도민요, 토속민요, 통속민요, 각 지방민요 -무 용 : 한국무용 (전통 및 창작 ) -기 악 : 국악기 전 분야 -사 물 : 개인 및 단체 (4인 이상)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로서 개인 및 단체 -경연일정 09:00(순서표배부)~09:30(경연시작) 4시종료. 4시10분~4:30 축하공연. 5시:00-시상식 * 학생부 오전 진행 후 일반부 진행 < 모든 순서 후 같이 시상함 > -경연시간 : 5분 이내 ※ 참가자는 필히 한복(공연복)을 착용해야 함 - 참가신청은 1인 1종목에 한함 - 입상자로서 결격사유가 발견될 경우 입상자격 취소 -심사위원 :분야 별 관계 전문가 -심사제도 (운영(심사)규정) *참가 자격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남,여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단 본 대회 및 타 대회 장관상 이상 수상한자는 참가할 수 없다) *본 대회 참가신청은 일 부문에 한해 신청이 가능하며 소정 양식에 준한다. *각 부문 경연 순서는 대회 진행 편의상 집행부에서 임의로 추첨하여 순서를 정할 수 있다. -*본 대회 경연자는 추첨순서를 엄격 준수하여 경연을 진행하되, 본 집행부가 인정하는 부득이한 경우가 발생한 경우 다른 참가자의 동의를 받은 후 경연 순서를 바꿀 수 있다. *반주자는 대동을 원칙으로 하되 고수를 동반 못할 경우 집행부에서 지정한 고수로 선택할 수 있다. -심사회피제도 참가자는 직접 스승이나 8촌 이내 친인척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때에는 해당심사위원의 심사 회피를 신청해야한다. 만약 심사회피를 신청하지 않아 수상을 한 후. 회피신청 사유가 있었음이 발견될 시에는 본 대회 주최. 주관단체는 수상취소를 결정 할 수 있고 수상자는 해당상장과 상금을 반환해야한다. 참가자는 이 조항을 수락하고 참가하는 것에 동의 하여야한다. -접수기간 : 2016년 5 월 20일 ~ 2016년 6월 20일18:00 까지 -제출서류 : 참가신청서 1부/단체참가자명부(단체참가자에한함)/일반부 ,학생부 명시 표기 -접수방법 : 등기우편, 팩스 또는E-mail(우편접수는 당일 소인까지 유효) *이메일 :uto4668@hanmail.net *팩스 : 032-207-7999, 070-8995-7941 *우편 : 인천시 남구 주안동 146-12번지 없 음 -반주비 : 5만원 지정고수가 필요할 경우 참가신청서에 명기 계좌번호 – 농협 , 예금주 : 박 인 희 ※(당일 접수시 혼잡하오니 계좌이체 요망) -문 의 ○ (사)우리소리보존회 인천광역시지회. 기획실장 010-9099-7941 (지혜미) 서기,총무 010-9492-2421 (장은희) -오시는 길 지하철 1호선 제물포역에서 하차(2번출구에서 도보로 10분정도 소요) 1호선 도화역에서 하차(3번출구에서 도보로 10분정도 소요) 버스 ①청운대학교: 간선63 ②③상수도사업본부: 간선2,6,6-1,10,13,14,28,29,46,62,63 지선510 ④⑤서화초등학교/하늘꿈교회: 간선3-2,12,13,17,24,41,63,70 지선510 네비게이션 이용 - 명칭검색 청운대학교 인천캠퍼스 - 주소검색 인천광역시 도화동 숙골로 113 * 참가자전원 점심식사 제공 ○ 일반부 구 분 훈 격 상장수 시상내역 대 상 인천시 시장상 1명 상장 및 상패 최우수상 인천시의회 의장상 2명 상장 및 부상 우 수 상 인천시 구청장상 4명 상장 및 부상 준우수상 (사)우리소리보존회 이사장상 4명 상장 및 부상 장 려 상 (사)우리소리보존회 인천광역시지회 지회장상 3명 상장 및 부상 특 별 상 국회의원상 2명 상장 및 부상 ○ 학생부 구 분 훈 격 상장수 시상내역 대 상 인천시 시장상 1명 상장 및 상패 최우수상 인천시의회 의장상 2명 상장 및 부상 우 수 상 인천시 구청장상 4명 상장 및 부상 준우수상 (사)우리소리보존회 이사장상 4명 상장 및 부상 장 려 상 (사)우리소리보존회 인천광역시지회장상 3명 상장 및 부상 지도자상 (사)우리소리보존회 인천광역시지회장상 2명 상장 특별상 국회의원상 2명 상장 및 부상 * 본 대회요강 및 시상내역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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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기< 길을 걸으며 지역 전통문화 답사>1. 일 시 : 2012년 4월 ~ 2013년 12월 매월 둘째주 토요일 오전 10:00 2. 장 소 : 서울 및 경기 일원에서 진행 (고궁, 지역 문화재, 왕릉, 등 매월 행선지 변동있음) 3. 주 최 : 서울흥사단 4. 주 관 : 서울흥사단 예술문화분회 5. 문 의 : 최병규 011-208-6275 올 4월 부터 시작되는 는 서울흥사단 예술문화분회가 흥사단 100주년에 즈음하여 지역 전통문화를 답사하기 위하여 마련한 행사이다. 매월 둘째주 토요일 오전 10시 부터 오후 2시까지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웰빙 걷기운동이라고는 하지만 올바른 걷기라든가 걷는 지역의 문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냥 바삐 걷기만 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 예술문화분회가 문화운동 차원에서 단순히 길을 걷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인지하는 해설이 있는 걷기문화를 조성하여 참여자들과 다양한 소통의 장이 되기위해 마련하였다. ** 4월 서울성곽 걷기 - 모이는 일시 : 2012년 4월 14일 오전10시 - 모이는 장소 : 흥사단 본부 1층(지하철4호선 혜화역1, 2번 출구 중간) - 걷는 행선지 : 서울성곽 북쪽 걷기 혜화문- 와룡공원- 말바위- 숙정문- 곡장- 청운대- 1.21소나무- 북악(백악마루)- 창의문(자하문) - 걷는 시간 : 3시간 정도(시간을 봐서 세검정으로 가거나 경복궁역으로 감) - 준비물 : 식수 및 간식. 필히 신분증 지참(숙정문 코스는 츨입증을 교환해야 하기에 신분증 필히 지참 바람) ** 5월 서울성곽 걷기 - 모이는 일시 : 2012년 5월 12일(토) 오전10시 - 모이는 장소 : 지하철4호선 한성대역 - 걷는 행선지 : 서울성곽 동쪽 걷기 혜화문- 낙산공원- 흥인지문(동대문)- 동대문역사공원- 광희문- 장충단 공원 - 걷는 시간 : 3시간 정도 ** 6월 서울성곽 걷기 - 모이는 일시 : 2012년 6월 9일(토) 오전10시 - 모이는 장소 : 장충단공원( 지하철3호선 동대입구) - 걷는 행선지 : 서울성곽 남쪽 걷기 장충단공원- 신라호텔- 타워호텔- 국립극장- 남산 봉수대- 숭례문(남대문) - 걷는 시간 : 3시간 정도 ** 7월 서울성곽 걷기 - 모이는 일시 : 2012년 7월 14일(토) 오전10시 - 모이는 장소 : 숭례문(지하철1, 2호선 시청역. 1, 4호선 서울역) - 걷는 행선지 : 서울성곽 서쪽걷기 숭례문- 서소문- 돈의문(서대문)- 인왕산- 창의문 - 걷는 시간 : 3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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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청운향토마을축제<4.26>우리의 자랑 ! 양평친환경농산물 우리의 문화 ! ● 제5회 청운향토마을축제 ● 봄 내음향기 물신 풍기는 4월에 토속음식, 무공해농산물판매, 민속놀이공연 등 고향의 정취를 맛보실 수 있는 제5회 청운향토마을축제를 다음과 같이 개최하오니 군민 여러분께서는 참석하시어 고향의 정취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 행사명 : 제5회 청운향토마을축제 ■ 일 시 : 2003. 4. 26(토) 09:00 ∼ ■ 장 소 : 양평군 청운면 신론1리 고론공원 ■ 주 관 : 청운향토마을축제추진위원회 ■ 후 원 : 양평군, 청운면 ■ 행사내용 o 볼거리 - 홍기철외줄타기, 옛소리풍물놀이, 청운초교 사물놀이, 연날리기,한국무용 (설장고), 강상 한소리농악, 에어로빅, 초청연예인공연, 자유로연극단, 마술공연등 o 먹거리 - 손두부, 메밀묵,동동주,인절미,감자전,감자떡,막국수, 송어회,메밀전병, 녹두부침,더덕구이,청국장,보리밥등 o 할거리 - 민속놀이공연(제기차기,그네뛰기,투호놀이),향토노래자랑, 인절미만들기, 막국수분틀누루기,송어잡기경연,갈기산등산등 ■ 문 의 : 향토마을축제추진위원회 031) 770-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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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 100주년 기념 제100회 한국의 명인명무전3월 26일(화)~ 27일(수)오후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제100회 공연의 금자탑을 세우다오늘날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1독립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동국예술기획과 한국명인원이 주최 주관하는 제100회 ‘한국의 명인명무전’이 3월 26일(화) ~ 27일(수)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해설과 이색적인 콜라보의 독립선언문 낭송과 영상, 춤이 음악으로 변주되는 입체적인 춤 사위 ‘한국의 명인명무전’ 으로 서울시민들을 찾아간다. 전통의 원형 보존과 전승이라는 핵심가치를 기반으로 전통춤의 뿌리를 지켜가면서 전통춤과 소리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모습들을 내재화시켜, 무대 위에서 승화시켜온 ‘한국의 명인명무전’ 은 한(恨)과 설움을 영상과 춤으로서 전통의 곰삭은 맛과 향기와 멋이 前無後舞(전무후무)한 공연으로 펼쳐지게 될 것이다. 한국의 명인명무전의 기록 그동안 한국의 명인명무전 제100회를 이어오는 동안 조선시대의 마지막 무동 명무 故 김천홍 선생을 비롯하여 한 시대의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판소리 명창 故 박동진선생, 명무 故 김계화선생, 일인창무극 故 공옥진선생, 명무 故 이매방선생, 배뱅이굿 故 이은관선생, 여창가곡 故 김월하선생, 가야금병창 故 박귀희선생등 전통예술분야의 명인들이 무대 위에서 명멸했다. 이 외에도 3,000여 명의 전통예술인들이 예술혼을 불살랐으며 150여 개의 전통춤과 소리가 깊은 인간의 정서를 녹여낸 춤사위와 소리의 향연을 선사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중․소․대도시를 비롯해 해외(일본, 중국, 몽골, 미국, 하와이)무대 등 70여 곳에서 공연된 ‘명인명무전’은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는데 일조했습니다. ‘명인명무전’ 공연의 역사 속에 함께 했던 예술인들만 연(連) 3,000여 명에 달하며 공연장만 해도 국내외 60여 개 극장에 이르고 있다. 제100회 한국의 “명인명무전” 개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들의 원형보존과 계승으로 말할 수 있는 한국의 “명인명무전”은 이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의 공연이 가지는 의미가 특별합니다. 이번 공연은 전통예술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보기 드문 보석과 같은 이매방류살풀이춤 준인간문화재 정명숙 선생, 통영살풀이춤 인간문화재 엄옥자 선생, 안중근 의사가 인간문화재 정순임 선생, 피리독주(상령산) 인간문화재 정재국 선생, 승무 인간문화재 송법우스님, 평양검무 인간문화재 임영순 선생, 대금독주(팔도아리랑)인간문화재 이생강,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 강정숙 선생, 고깔소고춤 인간문화재 정인삼 선생, 입춤 인간문화재 최윤희 선생 등, 원로와 중견무용가 120여 명이 출연하며, 독립선언문 낭송으로 백시향 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의 낭송과 박동국 동국예술기획 대표, 명예 예술경영학 박사의 예술총감독, 청운대학교 장선애 겸임교수의 해설과 영상으로 진행되는 아름다운 미학의 명품공연이 서울시민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의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26일 (화요일) 첫째날 名人名舞(명인명무)※ 독립선언문 낭송 / 백시향(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1. 벽사정재만류승무/ 정용진(벽사 정재만 춤 보존회 회장) 2. 호남검무 / 김자연(사,한국무용연합회 회장)외7명 3. 부채춤 / 정현숙(정형숙 무용단 단장) 4. 조흥동류진쇠춤 / 이순림(심양대학교 예술대학 교수)외4명 5. 강선영류태평무 / 조성란(태평무 이수자) 6. 살풀이춤 / 김지원 (단국대학교 교수) 7. 한량춤 / 이윤제, 이명순(맹사성 전국 국악경연대회 대상) 8. 최종실류소고춤 / 이봉주 (거리점령단 대표) 9. 한양교방춤 / 김원화(김원화﹠춤 예술단 대표) 10. 진도북춤 / 김영옥 (화개 김영옥무용단 단장)외10명27일(수요일) 둘째날 前無後舞(전무후무) ※ 독립선언문 낭송 / 백시향(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1. 입 춤 / 최윤희 (인간문화재)외15명2. 평양검무 / 임영순 (인간문화재)외11명3. 피리독주(상령산) / 정재국 (인간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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